지브레인,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 첫걸음

국내 뇌질환 의료기기 개발기업 지브레인(Gbrain)이 한국 최초로 뇌이식 의료기기의 임상 이식을 성공적으로 완료해 뇌신경 기술의 상용화 가능성을 본격화하고 있다. 서울대학교병원 신경외과 이은정 교수팀이 지브레인이 개발한 '핀어레이(Phin Array)' 임상 이식 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사진=정소희 기자]

[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추웠다.

지난 16일 서울대병원 수술실. 직접 환자를 대상으로 시술하는 곳에 들어가기는 낯선 일이었다.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에 초록색 가운으로 갈아입었다. 손 소독과 마스크, 신발 덧신, 일회용 모자 등을 착용한 뒤 수술실로 들어갔다. 의료팀은 이미 수술을 시작하고 있었다.

수술실은 추웠다. 초록색 가운 속으로 차가운 공기가 쑥 들어왔다. 당시 바깥은 30도에 이르는 무더위였는데 수술실은 차가운 겨울이었다.

에어컨 가동이 다른 곳보다 무척 강했다. 수술실의 무거움과 엄중함, 곳곳에서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컴퓨터 모니터, 의료팀의 진지함 등이 결합한 ‘차가운 수술실 풍경’은 낯설었다.

이은정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수술 중 뇌파 측정 모니터와 관련 영상을 번갈아 보면서 환자의 뇌를 살펴보고 있었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시대 열리나

서울대병원 뇌전증팀은 뇌전증으로 투병 중인 환자의 뇌에 지난 9일 64채널의 ‘핀어레이(Phin Array)’ 전극을 설치한 후 일주일 동안 뇌파 모니터링을 통해 어느 곳에서 뇌전증이 시작되는지를 분석했다. 이날 수술은 뇌에 이식한 뇌파 측정 전극을 제거하고, 확정된 뇌전증이 발생하는 곳을 제거하는 과정이었다.

이번 수술은 ‘한국형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이다. 현실화의 첫걸음을 뗐다는 측면에서 눈길을 끈다. 이 임상시험에 사용된 전극은 국내 뇌질환 의료기기 개발기업인 지브레인(Gbrain)이 만든 것이다.

김병관 지브레인 대표는 “국내 기술팀이 개발한 첫 침습형 뇌이식 의료기기 임상 이식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며 “국내 기술로 개발된 뇌신경(Brain-Computer Interface) 기술의 임상 적용이 본격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브레인이 개발한 ‘핀어레이’ 피질 전극의 첫 환자 임상 이식이었고, 이은정 교수팀이 수술을 집도했다. 환자는 수술 후 현재까지 안정적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번 수술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을 받은 탐색 임상시험의 일환으로 실제 수술 환경에서 기기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하는 중요한 단계이다.

이은정 교수는 “이번 임상실험은 핀어레이의 효과성과 안전성을 위한 것”이라며 “앞으로 5명 정도를 대상으로 동의한 환자에게 같은 임상을 계속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핀어레이’는 기존 의료기기와 비교했을 때 다른 점이 있다. 기존 실리콘 기반 전극은 약 1mm 두께로 뇌의 곡면 구조에 제대로 밀착하지 못했다.

복잡한 뇌피질 곡면 정밀 커버

반면 핀어레이는 머리카락 두께의 5분의1 이하인 초박막 유연 전극으로 설계돼 뇌 피질의 복잡한 곡면을 정밀하게 커버할 수 있다. 또한 뇌의 침습 정도가 작고 고해상도 뇌파 획득이 가능하다. 기존 기술의 한계를 넘어서는 신경신호 품질을 제공한다.

이은정 교수팀이 지브레인 개발 제품인 '핀어레이(Phin Array)' 임상 이식 수술을 집도하는 있다. [사진=정소희 기자]

이번 임상에 사용된 핀어레이 전극은 병원에서 보유하고 있는 뇌파계와 유선으로 연결된다. 지브레인은 올해 말에서 내년 사이 전극과 뇌파계를 통합해 뇌파 기록과 전기 자극이 가능한 완전 이식형 시스템의 임상시험도 계획하고 있다.

지브레인의 침습형 뇌이식기기 개발은 단순히 수준 높은 뇌파신호 획득을 넘어서 만성 신경계 질환 치료와 뇌파신호를 이용한 외부기기 제어 등을 목표로 한다.

목표로 하는 만성 질환에는 뇌전증, 파킨슨병, 뇌졸중 재활, 이명 등이 포함된다. 외부기기 제어용 BCI 응용으로는 모바일 기기 제어, 로봇 조작 등으로도 확장이 가능하다. 팔이나 다리 등에 의수나 의족을 했을 때 뇌파를 이용해 조작이 가능한 셈이다.

의료기기 개발을 넘어 신경 재활, 보조공학, 뇌 기능 향상 기술 등 다양한 분야로 적용할 수 있다.

뉴로사이언스 통해 인간 능력 끌어올린다

김 대표는 “이번 첫 임상 이식은 단순한 기술 검증을 넘어 국내에서 침습형 BCI 기술이 임상 환경에 진입한 역사적 전환점”이라며 “기술과 의료의 접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서울대병원 정천기 교수팀과 지브레인이 참여하고 있고 산업통상자원부의 ‘알키미스트 프로젝트–Brain to X’의 일환으로 진행하고 있다.

국내 뇌질환 의료기기 개발기업 지브레인(Gbrain)이 한국 최초로 뇌이식 의료기기의 임상 이식을 성공적으로 완료해 뇌신경 기술의 상용화 가능성을 본격화하고 있다. 서울대학교의학연구원 신경과학연구소 정천기 책임연구원(왼쪽)과 김병관 지브레인 대표가 아이뉴스24와 인터뷰를 갖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정소희 기자]

지브레인은 앞으로 후속 임상과 기술 고도화를 통해 ‘차세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반 치료 플랫폼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핀어레이에 대한 국내와 해외(미국) 판매 허가는 완료한 상태이다. 올해 말에서 내년초 사이에 전극 뇌파형 일체형 기기(프로젝트명 : Phin Stim) 임상을 시작한다.

김 대표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로 정부의 지속적 투자와 미국으로 대표되는 주요 국가에 의한 BCI 뇌파 데이터의 독점 해소를 강조했다. 실제 일론 머스크가 만든 뉴럴링크(Neuralink)는 BCI의 대표 기업으로 꼽히는데 최근 약 8000억원의 자금을 투자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BCI로 파생되는 산업 역시 미국에 독점될 가능성이 높아 기반 산업에 대한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BCI 사업은 규제가 높은 산업이어서 많은 자금과 시간이 요구되는 사업이기 때문에 민간투자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국가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앞으로의 연구개발에 대해 김 대표는 “좀 더 작고 최소 침습적 하드웨어의 개발이 필요하다”며 “지금은 중증 질환과 장애 극복에 집중하고 있는데 앞으로 제품 경량화에 따라 가볍고, 환자 수가 많은 질환으로 점차 넓혀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BCI의 전환점은 전기 자극으로 특정 정보를 사람에게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기술에 있다고 판단했다. 이를 통해 정상인도 브레인 칩을 장착해 인공지능(AI)에 버금가는 정보처리를 할 수 있는 미래가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천기 서울대의학연구원 신경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트리니티가 헬기 조정을 위해 했던 것 같이 버튼 하나만으로 빠르게 학습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지금의 컴퓨터 사이언스를 통한 인공지능이 아니라 뉴로사이언스를 통해 인류의 능력을 100% 활용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연구원은 “(Brain To X의) 임상을 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고 플랫폼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앞으로 이번 제품을 통해 사람의 기능을 증진시키는 방법을 여러 차원에서 모색할 것이고 후속 연구를 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종오 기자(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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