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수 논설위원
민생·성장 앞세운 李 실용정부
민주당發 반시장법안 수두룩
혼선 주는 기존 법안 정리 절실
기업 투자 활성화에 총력 쏟을 때
노동 편향 지속, 동기 부여 못 해
새 시대 선도 위해 與 변화 필수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16일 됐다. 국정 운영의 큰 방향이 잡혀간다. 실용주의를 중시하고, 민생·성장을 강조한다. 경제 살리기 의지가 두드러진다. 20.2조 원(지출)의 추가경정예산도 같은 맥락이다. 이 대통령의 경제 공약과 멀지 않다. 잠재성장률 3%, 인공지능(AI) 3대 강국, 국력 세계 5위라는 ‘3·3·5’ 비전을 새삼 상기시킨다.
문제는 이재명 실용정부와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의 간극이다. 얼마 전 대형마트 공휴일 의무 휴업 논란이 단적인 사례다.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지방자치단체별로 이미 자율적인 평일 휴업을 시행 중인 판에, 돌연 공휴일 휴업을 못 박는 법안(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강행하려 들어 소동이 벌어졌다. 공휴일 휴업은 골목상권을 살리는 실효성도 없고, 해당 주민과 소상공인들조차 불편을 호소한다는 사실은 누차 확인된 바다. 중국 영향력이 커지는 온라인 쇼핑몰만 반사이익을 볼 우려도 크다. 당내에서부터 이견이 제기되면서 국회 처리는 미뤄졌지만, 꺼진 불이 아니다. 이와 유사한 민주당발(發) 유통 규제 법안 20여 개가 국회에 제출돼 있다고 한다. 이런 반시장 법안들은 경제 분야 곳곳에 수두룩한 실정이다.
여당이 정부의 경제 운용에 어깃장을 놓는 형국이다. 민주당이 집권당이 됐는데도, 국정에 혼선을 초래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국정 방향을 공유하는지, 당론 수렴이나 대통령실과의 협의가 제대로 가동되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3·3·5 경제는 반시장을 넘는 게 1차 관건인 상황이다. 마침 210조 원 규모의 공약을 점검할 국정기획위원회도 가동 중이다. 국민에게 혼란을 주지 않으려면 기존 법안들까지 망라해 신속한 교통정리가 요구된다.
실용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민생·성장이라면 기업 투자 활성화에 총력을 쏟아야 한다. 지금 기업들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압박에 미 공장 설립부터 극한 지역인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까지 투자를 압박받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자동차·배터리 등 주력 업종의 많은 기업이 이미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했고, 국내에서도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어서 투자 여력이 빠듯하다. 게다가 철강·석유화학·유통 등은 중국의 저가 공세까지 겹쳐 합병·매각 등 뼈아픈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기업의 의욕을 살리는 것부터 쉽지 않다.
1%대로 추락한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리고, 100조 원 투자도 부족할 AI 3대 강국을 위해선 산업뿐만 아니라 국가 전반에 걸쳐 대개혁이 불가피하다. 첨단 산업을 이끌 인재 양성, 근로 시간 유연화와 근로 형태의 다양화 등은 발등의 불이다. 그렇지만 지금 여당은 야당 시절의 색깔을 그대로 유지한 채 새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특히 주 4.5일 근무제, 법적 정년의 단계적 연장(65세)에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 강행 등 노동 편향성이 너무 강하다. 노란봉투법은 불법 파업 면책 외에, 하청업체 근로자에게 원청업체 교섭권까지 허용한다. 이렇게 되면 국내에 투자를 많이 하고 생태계를 넓혀 수백 개의 협력업체를 둔 기업일수록 1년 내내 파업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투자할 의욕과 동기가 생기겠나.
최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은 올해 69개국 중 27위로 작년보다 7계단이나 하락했다. 기업의 효율성에서 23위에서 44위로 떨어진 게 결정적이다. 기업 여건은 47위에서 50위, 노동시장은 31위에서 53위로 급락했다. 그 결과, 대기업 경쟁력은 41위에서 57위로 꼴찌 수준으로 추락했다.
글로벌 경제전쟁이 기업을 넘어 국가 차원으로 비약해 주요국마다 정부와 국회가 직접 전면에 나서고, 기업 지원에 온 힘을 쏟는다. 한국은 기존 주력 산업이 힘겨운 경쟁을 하는 속에서도 조선·원전·방산 등이 새 길을 트고 있다. 이 대통령이 성장을 강조하는 것도 지금이 비상 상황이라는 인식을 반영한다. 여당의 환골탈태가 필수다. 김병기 민주당 새 원내대표가 주요 쟁점 법안의 속도 조절을 시사했지만,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입법을 전면 중단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야당이 아니라 여당이 국정의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새 시대엔 새 정치가 필요하다. 여당이 달라지고 국회가 달라져야 하는 게 핵심이다.
문희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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