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인권네트워크, 기자회견…새 정부에 난민 보호 10대 제안

5명의 난민 증언자와 인권단체 관계자들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5명의 난민 증언자와 인권단체 관계자들이 20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새 정부에 바란다'는 주제로 기자회견 및 증언대회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5. 06. 20 phyeonsoo@yna.co.kr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정권은 바뀌었지만, 난민에 대한 차별과 배제는 여전합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세계 난민의 날(6월 20일) 25주년을 맞아 난민인권네트워크는 20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10층 배움터에서 기자회견 및 증언대회를 열었다.

국내 20여개 인권단체로 구성된 난민인권네트워크는 새 정부를 향해 난민 권리 보장을 위한 10대 정책 제안을 발표하고 실질적 정책 전환을 촉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난민은 국제적 위기의 희생자일 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존엄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며 새 정부가 인권의 가치를 회복하고 국제사회 책임을 다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면서 정책적 10대 요구안을 새 정부에 공식 제안했다.

10대 요구안에는 ▲ 난민법 개악 중단 및 국제 인권 기준에 부합하는 정책 수립 ▲ 난민 인정률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0%) 수준으로의 상향·전문적이고 신속한 심사 제도 마련 ▲ 분쟁지역 난민 신청자에 대한 신속한 보호와 안정적 지위 보장 ▲ 공항 난민 심사 제도 개선 및 독립된 보호 공간 마련이 포함됐다.

아울러 ▲ 상설 난민심판원 설치를 통한 이의제기 절차의 독립성과 전문성 확보 ▲ 장기 구금 제한 및 대체 수단 마련과 아동 구금 금지 ▲ 난민 신청자에 대한 취업 허가 개선 및 주거·의료·생계 지원 확대 ▲ '남용적 신청' 프레임 폐기와 모든 난민 신청자의 체류권 보장 ▲ 인도적 체류자의 가족 결합권·노동권·교육권 보장 및 정착 지원 제도 마련 ▲ 난민 혐오에 대한 단호한 반대 및 정부의 공식적 보호 의지 표명·사회인식 개선 노력 강화 등도 담겼다.

인권단체들에 따르면 해외 난민은 한국에 들어오는 것도 매우 힘들고, 겨우 입국한 이들은 공항에서 심사조차 받지 못한 채 쫓겨나는 실정이다.

1%에 불과한 난민 인정률, 20개월까지 가능한 장기 구금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난민이 처한 현실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2025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 정부의 난민 정책에 대해 ▲ 극히 낮은 난민 인정률 ▲ 불투명한 공항 심사 절차 ▲ 장기 구금과 강제 송환 ▲ 생계·의료·교육 지원 미비 ▲ 가족 결합권 미보장 등의 문제를 열거하며 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인권단체들은 우크라이나, 수단, 가자지구 등 전 세계 분쟁 지역에서 이어지고 있는 장기적 전쟁과 인도주의 위기 속에서 한국 정부가 보여온 소극적이고 배제적인 대응을 강하게 비판해 왔다.

난민인권네트워크는 기자회견에서 "새 정부가 시민의 손으로 권위주의를 극복한 만큼 그 민주주의 정신이 난민과 이주민에게도 확장돼야 한다"며 "새 정부는 혐오에 기대는 '정치'가 아니라, 국제사회에서의 '책임 있는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난민들이 겪는 현실을 전하는 5명의 증언자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난민 증언대회에서 5명의 난민이 난민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2025. 06. 20 phyeonsoo@yna.co.kr

난민 증언대회에서는 분쟁과 박해를 피해 한국에 온 난민 5명이 직접 마이크를 잡았다. 이들은 '신속하고 공정한 보호 절차'의 필요성을 호소하며, 난민 신청자로 살아가면서 겪는 고통과 단절, 차별의 현실을 조용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전했다.

수단 출신 압둔 씨는 "수단은 2년 넘게 총성이 멈추지 않고, 도시는 무너졌으며 가족은 흩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2022년 한국에 도착했지만, 법적 지위가 없어 취업, 의료, 통신, 금융 등 일상생활의 기본 권리를 누리지 못한 채 수년을 버텨왔다"고 토로했다.

또한 난민 심사 결과가 제각각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어떤 이는 6개월 만에, 또 어떤 이는 3년이 지나도 결과를 받지 못한다"며 이런 무작위성과 불공정은 난민을 더 깊은 소외로 밀어 넣는다고 했다.

에티오피아 출신 난민 에리마 씨는 9년간의 이산과 불확실한 체류 상태 속에서 공동체의 힘으로 버텨왔다고 말했다. 그는 "NGO, 자원봉사자, 난민 지원센터가 없었다면 견디지 못했을 것"이라며 "공동체는 제 상처를 삶의 이유로 바꿔줬다"고 전했다.

그는 6·25전쟁 참전국이었던 에티오피아와 한국의 역사적 인연을 언급하며 "그때 우리는 한국의 곁에 섰다"며 "이제 한국 정부와 국민이 우리 곁에 서주시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난민 증언대회 및 기자회견 포스터 [난민인권네트워크 제공]

예멘 출신 압둘 하산 알자마이 씨는 '인도적 체류자' 자격으로 한국에 머물며 가족과의 오랜 헤어짐으로 인한 고통을 증언했다.

그는 "막내아들은 저를 한 번도 본 적 없이 자랐고, 여덟살이 돼서야 처음 만났다"며 울먹였다. 하산 씨는 "인도적 체류는 임시 상태일 뿐, 정착도 가족 초청도 어렵다"며 "가족 결합이 가능하도록 법적 기반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동아프리카 출신 K씨는 인천공항에 도착한 날부터 '감금 아닌 감금' 상태로 8개월을 보냈다. 난민 신청은 곧바로 기각됐고, 이후 출국 대기실에서 매일 같이 본국 송환 압박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하루 세끼 제공되는 음식, 한 벌의 옷, 추운 바닥에서의 수면 등을 거론한 뒤 "인권은 없었다"면서 "난민 신청이 죄가 아니라면, 왜 우리는 이토록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아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카슈미르 출신 인권운동가 사다르 씨는 뉴질랜드로 향하던 중 인천공항에서 체포돼, 경기도 화성 외국인보호소에서 약 2년간 구금됐다. 그는 장기 구금 중 단식투쟁까지 하며 버텼고, 결국 NGO의 도움으로 풀려날 수 있었다.

그는 "보호소는 보호가 아니라 감금이었다"며 구금에 반드시 기한을 명시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통한 제도 개선을 강력히 촉구했다.

phyeon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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