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오션 하청 노사, 상여금 50%인상·상용공 확대 등 합의

-연대 시민들 “한국옵티칼·세종호텔 고공농성도 해결돼야”

“그동안 고공의 안녕과 승리를 빌어준 모든 시민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오늘도 불굴의 의지로 고공농성 중인 한국옵티칼 박정혜, 세종호텔 고진수 동지에게 먼저 내려와 정말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 김형수 /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지회장

조선 하청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97일간 고공농성을 해 온 김형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이하 조선하청지회) 지회장이 어제(19일) 땅으로 내려왔다.

김 지회장은 최저 임금 수준인 한화오션 하청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등을 위해 지난 3월 15일 서울 중구 한화 본사 앞 30미터 높이의 CCTV 철탑에 올랐다. 흔들리는 철탑 위에서 몸을 제대로 펴지도 못한 채 100일 가까운 시간을 버텼다. 

김 지회장의 고공농성은 한화오션 하청 노사가 2024년 임단협 교섭안에 합의하면서 마침표를 찍었다. 이날 하청 노사는 △상여금 50% 인상 △ 상용공(하청업체 정규직) 확대 △조합원 취업을 방해하는 ‘블랙리스트’ 작성 금지 △산재 예방 활동 명문화 등에 합의했다. 

조선하청지회가 작년 4월 임단협 교섭을 시작한 후 1년 2개월 만에 거둔 결과로 김형수 지회장이 고공에서 합의안에 직접 직인을 찍었다. 조선하청지회는 원청인 한화오션과 직접 교섭을 원했지만, 원청은 끝내 교섭장에 나오지 않았다.

김형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은 한화오션 하청 노동자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지난 3월 15일 서울시 중구 한화 본사 앞 30미터 높이 철탑에 올라 97일간 고공농성을 했다

지난 6월 19일 서울 중구 한화 본사 앞 30미터 높이 철탑에서 김형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이 하청 노사 합의로 이뤄진 단체협약안에 직인을 찍고 있다 (출처 : 금속노조)

한화 본사 앞에 모인 시민들의 외침…“김형수 고생했다”

이날 서울 중구 한화 본사 앞에선 오후 2시부터 김 지회장의 고공농성 해제를 환영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장에는 거제에서 올라온 조선하청지회 조합원과 시민 등 수백 명의 인파가 모였다. 전날 경찰이 김 지회장을 집시법 위반 등의 혐의로 체포 영장 집행을 예고하면서, 농성장 주변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정치권의 관심도 높았다.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민병덕 을지로위원회 위원장, 김주영 환경노동위원회 간사, 한창민 사회민주당 의원, 정혜경 진보당 의원 등 여러 명의 국회의원이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오후 2시 30분 경 김 지회장을 지상으로 데리고 내려올 크레인이 철탑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경찰과 조선하청지회와의 협의 하에 한창민, 허성무, 정혜경 의원이 대표로 크레인을 타고 김 지회장이 있는 철탑으로 이동했다. 

곧이어 김 지회장이 철탑에서 나와 의원들이 있는 크레인 위로 옮겨 탔다. 그는 시민들을 향해 파란색 금속노조 깃발을 흔들며 지상으로 내려왔다. 시민들은 고공에서 내려오는 김 지회장을 바라보며 “김형수, 고생했다”, “함께 싸우고, 함께 승리하자”는 구호를 외쳤다. 시민들은 악기를 연주하고, 깃발을 세차게 흔들며 김 지회장의 귀환을 환영했다.

김형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지회장이 고공농성 97일째인 6월 19일 오후 2시경 서울 중구 한화오션 본사 앞에서 고공농성을 중단하고 금속노조 깃발을 흔들며 지상으로 내려 오고 있다

김형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지회장이 고공농성 97일째인 6월 19일 오후 2시경 서울 중구 한화오션 본사 앞에서 고공농성을 중단하고 지상으로 내려 오고 있다

97일 만에 땅으로 내려온 김 지회장은 고공농성 이전보다 많이 야윈 모습이었다. 일부 시민들은 그 모습에 눈물을 쏟기도 했다. 김 지회장은 조선하청지회 조합원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기자회견장으로 이동했다. 

땅 밟은 김형수 지회장의 첫 마디…"시민들께 고맙습니다＂

마이크를 손에 쥔 김형수 지회장의 첫 마디는 “시민들께 감사하다”는 인사였다.

“모두 고맙습니다. 우리 노동자, 시민들의 연대와 지지, 응원의 힘으로 승리했다고 생각합니다. 광장에서 윤석열 파면과 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을 함께 외쳤던 동지들이 만들어 낸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 김형수 /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지회장

이어 김 지회장은 장기간 이어진 단체교섭 과정을 설명하며 앞으로의 각오를 밝혔다. 그는 “2024년 4월 19일 시작된 임단협 투쟁이 1년 2개월 만에 마무리되었다”며 “하지만 교섭이 마무리될 때까지 (원청) 한화오션은 코빼기도 눈에 띄지 않았다. 2025년 교섭에서는 반드시 원청을 교섭 테이블에 앉히고 말겠다”고 말했다.  

지난 6월 19일, 97일간의 고공농성을 마치고 땅으로 내려온 김형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의 모습

앞서 조선하청지회는 임금 인상의 실권을 쥔 원청과의 교섭을 요구하며 지난해 11월 13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한화오션 거제 조선소 안에서는 노숙 농성과 천막 농성도 벌였다. 이들이 원청인 한화오션에 요구한 건 약속 이행이었다. 2023년 한화오션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할 당시 ‘하청 노동자 임금과 복지를 한화오션 정규직의 80%까지 단계적으로 맞춰주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원청인 한화오션의 묵묵부답에 김 지회장은 지난해 말 국회 앞에서 22일간, 강인석 부지회장은 거제에서 49일간 단식농성도 했다. 12.3 내란 이후인 지난 1월 7일 부터는 거제의 조합원 일부가 서울 한화 본사로 상경해 천막 농성장을 차렸다. 그럼에도 원청인 한화오션은 교섭에 응하지 않았고, 하청업체와의 교섭도 진전이 없었다. 김 지회장은 결국 한화 본사 앞 철탑에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하게 됐다.

서울 중구 한화 본사 앞에 지난 1월 7일부터 설치돼 있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천막농성장. 그 오른편으로 김형수 지회장이 지난 3월 15일 올라 97일간 고공농성을 했던 CCTV철탑이 있다. 

지난 1월 7일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조합원들이 서울 중구 한화 본사 앞에 설치한 천막 농성장 안 모습. 윤석열 탄핵을 외친 광장의 시민들이 조선하청지회 농성에 연대하고 함께 투쟁했다

“원청과 교섭 위해 ‘노조법 2·3조’ 개정 시급”

한화오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한화오션 정규직 노동자 1인 평균 연봉은 약 8,900만 원이다. 지난 2022년도에 비해 20% 이상 올랐다. 한화오션은 작년 2,000억이 넘는 영업이익을 냈지만, 하청업체는 경영난을 호소하며 하청 노동자의 임금 인상을 회피했다. 원청이 돈줄을 풀어야 하청 노동자들의 임금도 오를 수 있다. 조선하청지회가 원청과의 교섭을 요구하는 이유다. 

그동안 단체교섭을 진행해 온 강인석 부지회장은 “애초 우리가 상여금 300% 인상을 요구했던 것에는 훨씬 못 미치는 결과이지만, 상여금을 아예 인상할 수 없다던 하청업체로부터 50% 인상이라도 끌어낸 것, 노조 조합원의 취업을 방해하는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금지하기로 합의한 것은 의미 있는 성과”고 평가했다. 

김형수 지회장은 원청과의 교섭을 위해선 노조법 2.3조 개정안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조법 2.3조는 모든 노동자가 진짜 사장, 즉 원청과 교섭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앞서 윤석열 정부에서 두 차례나 법안이 통과됐지만, 윤 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김 지회장은 “노조법 2·3조 개정을 가로막고 있던 윤석열은 이제 사라졌다. 이제는 법 개정을 막을 사람이 없다. 하루라도 빨리 몸을 추스르고 노조법 2.3조 개정 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김 지회장, 꼬박 농성장 지킨 ‘말벌 동지’ 언급하며 눈물

김 지회장은 기자회견 도중 매일 농성장을 지켜준 ‘말벌 동지’들을 언급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말벌 동지’는 윤석열 탄핵 국면에서 노동조합 투쟁에 연대해 온 시민들을 말한다. 

이들은 탄핵 광장에서 한화오션 하청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현실을 알게 된 뒤 노조와 연대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조선하청지회 정식 조합원으로까지 가입했다. 김 지회장의 고공농성에도 기간 거의 매일 농성장을 지키며 김 지회장의 식사와 안부를 챙겼다. 

김 지회장은 “하루도 빠짐없이 고공 농성장을 지켰던 ‘맘마(활동명)’, ‘레어’ 등 우리 말벌 조합원 동지들 정말 고생 많으셨다. 정말 고맙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김 지회장 옆에 있던 ‘말벌 동지’들도 함께 울음을 터트렸다. 박수정(활동명 ‘레어’) 씨는 “97일간 함께 투쟁하면서 한 번도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 없고, 단 한 번도 뒷바라지라고 생각한 적 없다”며 “노조법 2·3조 개정까지 앞으로도 열심히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수 지회장이 19일 고공농성을 중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의 왼편에는 매일 고공농성장을 지켰던 ‘말벌’ 동지가 함께 서 있다

97일간의 고공농성을 마치고 6월 19일 지상으로 내려온 김형수 지회장과 조선하청지회 조합원들이 ‘단결, 투쟁’이라는 구호를 함께 외치고 있다

마지막으로 김 지회장은 여전히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들에게 미안함을 표했다. 김 지회장은 “오늘도 불굴의 의지로 529일째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박정혜 동지, 127일째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세종호텔 고진수 동지께 먼저 내려오게 돼서 정말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두 동지가 땅을 밟을 때까지, 끝까지 조선하청지회가 연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지회장은 이날 기자회견 직후 조선하청지회 간부와 변호인, 경찰과 함께 구급차에 올랐다. 97일간 굽어 있던 몸을 들것 위에 눕히고 녹색병원으로 이동했다. 병원에서 건강 상태를 확인한 이후, 경찰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김형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지회장이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노조의 이지영 사무장에게 미안함을 표하고 있다

김형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은 6월 19일 고공에서 내려온 뒤 구급차 실려 녹색병원으로 이송됐다

한화오션 앞 고공농성은 마무리됐지만, 아직 남은 과제가 많다. 당장 조선하청지회에는 각종 소송이 기다리고 있다.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시절이던 2022년 5월 진행한 조선하청지회의 51일간의 파업으로 하청 노동자들은 업무방해, 집시법 위반 등의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지난 2월 19일, 1심 재판 결과 김형수 지회장을 포함해 22명의 조합원이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사측이 노조 간부 5명을 상대로 제기한 470억 손해배상 소송도 법원에 계류 중이다. 다만 470억 손해배상 소송은 취하될 가능성도 있다. 윤석열 정부 시절 470억 손해배상 소송 취하는 업무상 배임이 될 수 있다던 한화오션이 윤석열 파면 이후 태도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한화오션은 지난 12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등과 만난 자리에서 “법률적 이슈 등 어려움이 있지만 회사 이미지에도 플러스가 되고, 지역에서의 요구가 있어 재발 방지 약속을 전제로 상생협력과 대승적 차원에서 손해배상 소송 취하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세종호텔·한국옵티칼 고공농성도 속히 해결되길”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국회의원들은 정치권이 고공농성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지 못한 점을 미안해하며 ‘노조법 2·3조 개정안’을 시급히 통과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은 “조선 하청 노동자가 조선소 도크(선박 건조장)안 철창 속에 스스로의 몸을 가두고, 49일간 단식과 97일간 고공농성까지 해서 오늘의 결과까지 올 수 있었다. 이렇게 잔인한 투쟁이 새 정부에서는 일어나선 안 된다. 정치권이 노조법 2·3조 개정으로 원하청 교섭 문제를 풀겠다”고 말했다. 

6월 19일 서울 중구 한화 본사 앞에서 열린 김형수 지회장의 고공농성 해제 기자회견에 참여한 시민, 노동자들이 투쟁 승리를 환영하고 있다

노동자들과 시민들은 여전히 고공농성 중인 세종호텔 고진수 노동자,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박정혜 노동자의 문제도 속히 해결하길 촉구했다. ‘말벌 동지’이자 조선하청지회 조합원인 장연우 씨는 “김 지회장의 고공농성이 끝난 건 다행이지만, 한국옵티칼하이테크와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이 남아있기 때문에 아직 투쟁이 다 끝난 것은 아니”라며 “이들과도 끝까지 연대 투쟁할 것이다. 많은 시민의 관심을 바란다”고 전했다. 

김형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이 97일을 보낸 서울 중구 한화 본사 앞 CCTV철탑

 김형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이 97일을 보낸 서울 중구 한화 본사 앞 CCTV철탑. 사진은 김형수 지회장의 고공농성 종료 이후 천막이 철거된 모습.

뉴스타파 홍여진 sarang@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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