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3대 강국으로 가는길
(2) 확장형 '소버린 AI' 로드맵 만들어라
한국형 AI모델 개발한다는데…
정부 '독자 AI' 목표 내걸었지만
빅테크 수준 이하 기술 의미 없어
업계 "101% 성능 갖춰야 경쟁력"
'소버린 AI' 놓고 의견 분분
"외국기술 택갈이만으로는 한계"
"토종만 외치다 갈라파고스 전락"
빅테크 기술 융합해 새 모델로
일정 영역 해외 기술에 문호 열고
LLM·서비스모델 함께 개발해야
AI 응용분야 비교우위 전략
지난 4월 네이버와 KT 간 ‘소버린 AI(인공지능)’ 논쟁이 붙었다. 김유원 네이버클라우드 대표가 “외산을 들여와 우리 상표를 붙였다고 소버린이라고 칭하는 건 언어도단”이라고 KT를 저격했다. KT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협력해 AI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에 최지웅 KT클라우드 대표는 “소버린 AI의 핵심은 데이터”라며 “기술 원산지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응수했다.
AI 전문가들은 두 기업 간 신경전을 두고 소버린 AI 개발과 관련해 방법론에서 얼마나 의견이 갈리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한다. 소버린 AI는 챗GPT 등 글로벌 빅테크의 AI 모델에 의존하지 않고, 특정 국가가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통제할 수 있는 AI를 총칭한다. 하지만 ‘독립’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해야 할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대규모언어모델(LLM)뿐만 아니라 데이터센터 등 인프라, AI 구동을 위한 컴퓨팅 자원인 클라우드 등을 모두 갖춘 소버린 AI를 구축하려면 막대한 자본이 필요해서다. 기술 독립만 강조하다 보면 자칫 한국을 ‘AI 갈라파고스’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국가대표 LLM 만든다는데…
“빅테크 성능의 95% 수준인 국가 AI 모델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지난 20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 목표가 공개된 후 한 AI 솔루션 스타트업 C레벨이 한 말이다. 과기정통부는 글로벌 프런티어 모델 대비 95% 수준인 성능의 한국형 AI 모델을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그는 “지금 빅테크들은 0.1%의 성능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며 “101%라면 모를까, 95%를 목표로 삼아 한국형 LLM을 개발하는 건 돈 낭비”라고 꼬집었다. 하정우 신임 AI미래기획수석도 대통령실에 선임되기 전 소버린 AI의 성능 목표를 ‘챗GPT 등의 95% 수준’으로 제시했다.
이 같은 상황을 두고 업계에선 국내 기업들이 개발한 LLM이 아직 글로벌 시장에서 뚜렷한 경쟁력이 없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소버린 AI라고 부를 수 있는 국내 토종 모델은 14개로 6곳의 기업이 만들었다.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X, LG AI연구원의 엑사원 등이다. 모델 수도 주요국(미국 128개·중국 95개)에 비해 부족하지만 세계에서 널리 인정받은 모델도 현재까지 없다. 앤드리슨호로위츠(a16z)가 발표한 ‘AI 서비스 톱 50’ 중 한국 모델 기반 AI 서비스는 0건이다.
소버린 AI 생태계가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쪽은 민간 기술에 정부 지원을 얹어 해외 빅테크에 휘둘리지 않는 토종 AI 모델을 자체 확보해야 한다고 본다. 하 수석이 평소에 언급해온 이른바 ‘육수론’이다. 모든 식당(기업)이 다 육수(파운데이션 모델)를 끓일 이유는 없지만 국가가 좋은 육수를 만들어 각 식당이 특색 있는 요리를 할 수 있게 공급할 필요는 있다는 얘기다. 외부 육수를 싸다고 쓰다간 갑자기 비용을 올리거나 공급이 끊길 때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논리다. 국방과 기업 기밀 등 보안이 민감한 분야에 해외 모델을 쓰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재명 대통령도 20일 울산에서 열린 AI 데이터센터 출범식에서 “챗GPT가 있는데 소버린 AI 개발이 낭비라는 얘기는 ‘베트남 쌀 생산이 많은데 뭘 농사를 짓냐. 사 먹으면 되지’ 하는 것과 같은 얘기”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소버린 AI가 미래 수출 전략이 될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AI를 개발할 역량이 부족해 외부에서 AI 파트너를 찾는 국가들이 대상이다. 네이버가 자체 LLM 기술을 기반으로 태국 사우디아라비아 모로코 등과 협력해 해당 국가들의 소버린 AI를 구축하고 있는 게 대표적 예다.
◇ “유연한 소버린 전략 짜야”
소버린 AI 구축에 얼마큼의 예산과 노력을 쏟을 것인가를 두고선 의견이 갈린다. 높은 모델 성능을 요구할수록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고 기업들이 예산 지원을 받아 LLM 생태계를 구축한다고 해도 결국 갈라파고스가 될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이미 챗GPT 등 글로벌 모델이 표준이 된 상황에서 K모델을 쓰다간 생태계에서 배제될 것이란 지적이다. 이경전 경희대 빅데이터응용학과 교수는 “K-GPT를 공공 배달 앱 하듯이 접근하면 안 된다”며 “정부는 뒤에서 지원하고 민간 기업이 주도하는 게 맞다”고 했다.
과거에도 정부는 각 분야 기업을 연결해 K산업 생태계 육성을 추진했지만 실패한 사례가 많았다. 한 테크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늘 특정 공간에 기업들을 모아놓고 무조건 국산 소스만 연결하려는데 기업들은 자율성을 잃고 최종 제품의 경쟁력도 떨어진다”고 꼬집었다. 소버린 AI 전략만 고집하다 보면 일부 대기업에만 지원이 쏠릴 것이란 문제도 제기된다. LLM 개발을 할 수 있는 기업 자체가 국내에 몇 곳 없어서다.
글로벌 빅테크 기술을 유연하게 섞어 새로운 ‘한국형 AI’를 개발하는 것 역시 소버린 AI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정 영역에선 해외 기술에 문호를 열고 LLM 개발뿐만 아니라 AI 응용 서비스 개발도 함께 신경 써야 한다는 얘기다. 홍유석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갑자기 세계 최고 LLM을 이기겠다는 것보다 특정 영역에서 효용성을 높이는 데 신경 쓰는 게 맞다”며 “AI 응용 분야에서 비교우위를 가져가는 전략을 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병호 고려대 인공지능연구소 교수는 “물론 원천기술에도 접근해야 하지만 그 위에 독자적인 서비스 모델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며 “세상을 완벽하게 바꿀 수 있는 독창적인 AI 기술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고은이/최영총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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