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필의 미래창
세계경제포럼 ‘10대 떠오르는 기술’ 발표
“5년 내 사회·경제에 큰 영향 끼칠 기술”
세계경제포럼이 2025년 10대 떠오르는 기술을 발표했다. 세계경제포럼 제공
다보스포럼으로 잘 알려진 국제 민간회의 조직 세계경제포럼(WEF)은 매년 중반 ‘10대 떠오르는 기술’(Emerging Technologies) 보고서를 통해 향후 3~5년 내 사회·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기술을 발표한다. 매년 초 발표되는 MIT 테크놀로지리뷰의 10대 혁신 기술(Breakthrough Technologies)과 함께 기술의 큰 흐름을 종합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다.
MIT 테크리뷰가 특정 기술 자체의 혁신성에 좀 더 비중을 두는 반면, 세계경제포럼은 기술의 파급력과 시장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포럼은 정부 당국과 기업 경영자들이 과학 및 기술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폭발적 시장 성장과 광범위한 사회적 혜택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는 기술을 제시한다고 설명한다. 한마디로 새로운 거대 시장을 형성할 블루오션 후보로 지목한 첨단 기술 목록인 셈이다.
세계경제포럼이 최근 13번째로 ‘10대 떠오르는 기술’을 발표했다. 올해의 10대 기술은 신뢰와 안전, 지속가능한 산업, 인간 건강, 에너지와 소재의 융합이라는 4가지 흐름이 주축을 이룬다. 이들을 관통하는 열쇳말은 건강과 지속가능성, 도시의 회복탄력성이다. 포럼의 10대 기술엔 각국 정부에 관련 기술 개발과 관련한 규제를 없애고 재정 지원을 촉구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출력하는 콘텐츠에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지문, 즉 생성형 워터마크가 숨어 있다. 구글 딥마인드 제공
보이지 않는 워터마킹, 신뢰와 안전 버팀목
신뢰와 안전 부문에서는 두가지 혁신 기술이 꼽혔다.
첫째는 협력 감지(Collaborative Sensing) 기술이다. 말 그대로 서로 다른 대상이나 환경을 감지하는 여러 센서나 장치들이 보내오는 정보를 공유해 더 정확하고 포괄적인 정보를 제공해주는 기술을 말한다. 예컨대 도시에선 차량, 교통 시스템, 응급 서비스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다.
보고서는 “이런 기술을 통해 도시 생활의 안전성을 높이고, 불필요한 교통량을 줄이고, 위기 상황에 더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둘째는 인공지능이 생성한 콘텐츠에 보이지 않는 태그를 붙이는 ‘생성형 워터마킹’ 기술이다. 생성형 워터마크는 특정 알고리즘이나 도구를 통해 감지하고 분석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쉽게 구분할 수 있게 해주기 위한 장치다.
구글, 메타 등 인공지능 대기업들은 이미 인공지능이 생성한 이미지, 문서, 동영상에 생성형 워터마킹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맞춰 워터마크를 제거하거나 위조할 수 있는 기술도 발전해가고 있다.
보고서는 “따라서 이 기술이 성공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정교한 사용 및 관리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며 “생성형 워터마킹은 콘텐츠 검증을 위한 또 하나의 도구가 아니라 합성 콘텐츠가 늘어나는 디지털 환경에서 신뢰가 구축되는 방식을 재구성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화석연료 대신 전기를 사용해 질소 비료를 만드는 기술은 탄소 배출 저감과 함께 비료 가격 안정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Unsplash/Hannah Hoggatt
탄소배출 줄이는 친환경 비료 생산
지속가능한 산업 부문에서도 두가지 기술이 선정됐다.
하나는 친환경 질소 고정 기술이다. 화석연료 대신 전기를 사용해 질소 비료를 만드는 기술을 말한다.
질소 비료를 만들려면 대기 중의 질소를 식물이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암모니아 형태로 바꿔줘야 한다. 그런데 기존 하버-보쉬 공법은 천연가스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가 대량으로 배출된다. 암모니아 1톤당 2.4톤의 이산화탄소가 나온다. 철강의 2배, 시멘트의 4배에 가까운 양이다.
반면 친환경 질소 고정 기술은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나 플라스마, 광촉매를 이용해 암모니아를 만든다. 따라서 농업부문의 탄소배출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보고서는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친환경 질소 고정 기술을 이용하면 수요가 있는 현장 가까이서 비료를 생산할 수 있어, 비료 가격 안정을 통한 식량 생산 안정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예상했다. 최근엔 리튬을 매개체로 사용하는 전기화학 기술도 선보였다.
다른 하나는 나노자임 기술이다. 나노자임(Nanozyme)은 ‘아주 작은 크기’를 뜻하는 나노(Nano)와 효소를 뜻하는 엔자임(Enzyme)의 합성어로, 우리 몸의 효소처럼 특정 생화학 반응을 촉진하는 인공 물질이다.
몸속 효소는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지만 나노자임은 금속 산화물, 금속 나노입자, 탄소 기반 나노물질 등 무기물질로 이뤄져 있다. 천연 효소에 비해 온도 등 환경 변화에 강하고 저렴하며 여러번 재사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보고서는 “나노 효소는 질병 진단, 치료 같은 의료 분야를 넘어 오염 물질 제거 등 환경 분야까지 활용 분야가 폭넓어 세계적인 문제에 지속가능한 방식의 해법을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GLP-1 관련 약물은 알츠하이머병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 치료에도 유망한 효과를 보이고 있다. DRK channel 유튜브
알츠하이머병에도 유망한 비만 치료제
건강 부문에선 세가지가 꼽혔다.
첫째는 생체공학 치료제(Engineered living therapeutics)다. 몸안에서 치료 물질을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설계된 미생물을 이용한 치료 기술이다. 한마디로 ‘살아 있는 치료제’다.
보고서는 “몸안에서 치료제를 생산하면 바이오의약품의 생산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고, 환자가 큰 거부감 없이 장기간 안정적으로 약물을 공급받을 수 있다”며 치료 비용 절감과 함께 치료 효과도 높일 수 있는 기술로 평가했다. 한 번의 투여로 치료제를 혈류로 계속 방출하는 미생물 플랫폼을 연구하는 미국의 채리어트 바이오사이언스, 족부 궤양에 치료에 필요한 세가지 단백질을 동시에 생산하는 박테리아에 대한 임상시험을 진행 중인 핀란드의 오랄리스 테라퓨틱스 등이 사례로 꼽혔다.
둘째는 신경퇴행성 질환용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 수용체 작용제다. 덴마크의 노보노디스크가 개발한 오젬픽, 위고비로 대표되는 이 약물은 원래 당뇨병과 비만 치료제로 개발돼 큰 효과를 봤다.
그러나 이 약물이 뇌 신경에도 영향을 끼쳐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에도 유망한 효과를 낸다는 연구와 초기 임상시험 결과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 약물이 혈류를 타고 뇌까지 올라가 뇌의 신경세포 등과 상호작용하면서 뇌의 염증을 줄이고 독성 단백질 제거를 돕는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 약물이 현재 마땅한 치료 방법이 없는 이들 질환에 새로운 희망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셋째는 자율 생화학 감지 기술이다. 효소, 항체, 살아 있는 세포 등을 결합한 작은 센서로 사람의 개입 없이도 24시간 내내 건강이나 환경 변화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술이다. 오염이나 질병을 조기에 감지해 시간과 생명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보고서는 지금까지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포도당 농도를 실시간으로 측정해 인슐린 분비 제어 장치와 연결된 스마트폰에 알려주는 웨어러블 혈당 센서를 꼽았다.
노르웨이 후룸반도의 토프테 지역에 설치된 세계 최초의 해수 삼투압 시범 발전소. 위키미디어 코먼스
자동차 차체가 배터리를 겸한다
마지막으로 에너지-소재 융합 부문에서도 세 가지가 선정됐다.
첫째는 구조화 배터리 복합재(Structural Battery Composites)다. 자동차나 비행기의 무게를 지탱하면서 동시에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소재를 말한다. 기존 방식은 배터리와 구조체가 별도로 존재하지만 이 방식은 두 가지 기능을 하나로 통합했기 때문에 무게와 부피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예컨대 탄소섬유는 구조적인 지지력을 제공하는 동시에 배터리의 전극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런 소재를 쓰면 전기차를 더 가볍게 만들어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이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효과로 이어진다. 보고서는 “아직 상용화 초기 단계에 있지만 앞으로 차량과 항공기 동체, 드론 프레임 등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둘째는 삼투압 발전 시스템이다.
삼투압 발전이란 염분 농도가 다른 두 액체물질 사이의 삼투압 차이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걸 말한다. 따라서 바닷물과 담수가 만나는 지점에 삼투압 발전 시스템을 적용할 수 있다.
자연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청정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또 발전 과정에서 리튬 같은 자원도 회수할 수 있다. 보고서는 해안 지역에 안정적이고 환경 영향이 적은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유망한 발전원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 개념은 1975년에 처음 제안됐다. 보고서는 “그동안 막 오염과 높은 비용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최근 기술이 좋아졌다”며 “논란의 여지가 없는 과학 원리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충분한 재정 투자가 이루어질 경우 전 세계 전력 수요의 거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전기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소형 모듈 원자로(SMR) 개발 기업 뉴스케일의 실물 크기 원자로 모형. 사이언스에서 인용
셋째는 더 안전하고 저렴한 첨단 원자력발전 기술이다.
보고서는 소형 모듈 원자로(SMR) 같은 더 작은 원자력발전소와 가스 냉각 원자로를 사례로 꼽았다. 기존 원자력 발전소에 비해 안전성이 높고, 입지 선택의 범위도 넓다는 점이 선정 이유다.
소형 모듈원자로는 모듈식 설계 덕분에 공장에서 제작해 외딴 지역이나 산업현장에 설치할 수 있고, 가스 냉각 원자로는 핵분열 반응으로 발생하는 열을 물 대신 가스로 냉각시키고 이 과정에서 가열된 가스를 수소 생산이나 중공업에 활용할 수 있다. 보고서는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과 사용자 확산으로 갈수록 늘어나는 전기 에너지 수요와 탄소 배출이 없는 전력 시스템 수요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기술로 기대했다.
2025년 10대 유망 기술은 세계경제포럼(WEF)의 글로벌 미래위원회 위원들과 공개학술지 출판사인 프런티어스(Frontiers)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는 전 세계 편집장, 10대 기술 운영위 위원들의 추천을 받은 250여개 기술을 대상으로 심사를 진행했다. 보고서 공동 작성기관인 프런티어스는 “동료 연구자들의 검토를 거친 증거, 인용 분석, 전문가 합의를 결합한 다단계 방식을 통해 혁신 잠재력이 가장 큰 기술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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