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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며 쌓은 23년 우정이 스크린에서 짙은 사랑으로 피어났다. 한예리와 김설진이 저예산 영화를 통해 힘겨우면서도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한다. 

3일 오후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시사회를 통해 공개 된 '봄밤(강미자 감독)'은 상처를 안고 폐허를 살아가는 영경과 수환이 죽음을 마주하며 펼치는 처참하고도 애처로운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 강미자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한예리 김설진이 호연을 펼쳤다. 

제75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Forum) 부문과 29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비전 부문 등에 초청 받으며 일찍이 작품성을 인정 받았던 '봄밤'은 권여선 작가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스크린을 통해 보여주는 문학 작품과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강미자 감독은 "권여선 작가님을 모르고 살던 사람이었는데, 소설을 보면서 뭐라 쉽게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을 느꼈다. 나이가 들면서 '마음 깊은 곳에 아픔이 고여있다' 싶었던 생각이 '봄밤'을 읽을 때 주체할 수 없었다. 제가 느낀 감정을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고 기획과 연출 의도를 말했다. 

'봄밤'은 처절한 서사를 담아낸 만큼 배우들의 연기에 많은 몫이 주어졌다. 한예리는 알코올 중독으로 무너져가는 영경, 김설진은 희귀난치성 질환인 류머티즘을 앓는 수환으로 분해 감정적으로 힘겨울 수 밖에 없는 도전에 나섰고, 무너질수록 빛을 발하는 열연을 완성했다. 

강미자 감독은 "베를린에서 관객들과 만났을 때 두 분의 연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더라. 당시 관객들은 김설진의 미세하몸짓에 감탄했고, 한예리에게는 '더 그레이트 한예리'라는 칭송을 보냈다"고 회상했다. 

이어 "제가 여자라서 그런지 저는 제 감정이 영경으로부터 출발하는 것 같았고, 그래서 주로 영경만 보며 촬영했다. 이후 영화를 보면서 김설진이 영경을 어떻게 바라보고 연기했는지 알 수 있었다. 두 배우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인사 드리고 싶다"고 고마워했다. 

'봄밤' 프로젝트 중심에는 한예리가 있었다. 강미자 감독과는16년 전 자신의 첫 장편 '푸른 강은 흘러라'를 함께 한 인연이 있고, 김설진은 2003년 전통예술원에서 처음 만나 23년 간 돈독한 우정을 지켰다. 김설진의 캐스팅 역시 한예리가 성사시켰다고. 

한예리는 "오랜만에 감독님의 연락을 받았는데 본인에게 정말 특별한 영화가 될 것이라고 하시더라. 그 말을 듣고 고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시작을 함께 했던 사람과 마무리를 같이 하고 싶다'고 하시는데 출연은 당연했다. 선택권은 따로 없었다"고 감독에 대한 남다른 신뢰를 표했다. 

김설진에 대해서는 "출연해줘서 너무 감사하다"는 인사부터 건네면서 "쉬운 이야기가 아닌데다가 확실한 체중 감량도 필요한 캐릭터였다. 김설진이 드라마 촬영을 병행하고 있었던 터라 '가능한 일일까' 걱정도 됐다. 개런티도 적었다. 근데 선뜻 '하겠다'는 답을 줘서 정말 고마웠다"고 전했다. 

이에 김설진은 "2003년 전통예술원에서 처음 알게 됐는데, 한예리는 한국무용과, 저는 창작무용과였다. 근데 예리가 자꾸 저희 과에 청강을 들으러 오더라. 전통무용, 한국무용을 한다는 분이 구경하는 게 신기했다"며 "그러다 다른 친구 작품에서 둘이 무용수로 만났다"고 첫 인연을 떠올렸다. 

다만 그렇게 춤을 추던 한예리가 자신이 해외에 다녀온 사이 배우가 돼 있어 놀랐다는 김설진은 "서로 사는 이야기를 하다가 영화까지 함께 하게 된 것이 신기하다. 저는 촬영하는 동안 '영경에게 어떤 걸 해줄 수 있을까' 고민했고, 함께 연기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는 진심을 남겼다. 

한예리 역시 "대학생 때 춤을 같이 추는 사람으로 만났다가 같은 앵글에 담기게 된 것이 신기하고 감사했다. '아, 이래서 어른들이 오래 살아야 한다고 하는건가. 보통 인연은 아니겠다' 생각이 들었다"고 읋조려 좌중을 폭소케 했다. 

이와 함께 한예리는 알코올 중독자라는 강렬한 캐릭터를 소화한 것에 대해 "삶이 쉬운 인물이 아니라 노인처럼 구부정한 자세를 만들려고 했다. 꼿꼿하게 걷지 못할 것이라 짐작했다"며 "술에 취하면 힘을 주체할 수 없고 몸도 컨트롤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또 "촬영을 할 땐 오로지 영경으로 존재했기 때문에 수환에게 많이 의지했다. 특별하게 말을 나누지 않아도 오빠는 항상 체온이 느껴지는 거리, 공간 안에서 저를 든든하게 지탱해 주고 있었다"며 "함께하는 동료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는 시간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김설진은 "영경은 긴 해바라기가 시들기 전 휘청거리는 느낌이었다면, 수환은 뿌리가 썩어 점점 말라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조금 더 움직임이 불편하고 내 마음대로 안 된다는 느낌을 보여주려고 했다"고 첨언했다. 

마지막으로 한예리는 "수환과 열렬히 사랑했고, 끊임없이 사랑을 받았다. 저희 영화 마냥 고통스럽게만 보시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김설진은 "반복 혹은 느림의 미학들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영화다. 머릿속에 오래 남을 수 있는 시 같은 이야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뜨거운 여름 잔잔하면서도 묵직하게 휘몰아칠 '봄밤'은 오는 9일 개봉해 관객들과 만난다. 러닝타임 67분. 

조연경 엔터뉴스팀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콘텐트비즈니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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