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석 특검은 검사 시절 화려하거나 힘센 자리에 앉은 적이 없다. 특수통 검사들의 필수코스인 대검 중수부 과장이나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부장을 맡지 못했다. ‘비주류 특수통’으로 분류되는 이유다. 이를 두고 정치권 수사 후유증으로 보는 시각이 있어 흥미롭다. 진보 보수 정권을 가리지 않고 유력 정치인들을 잡아넣은 탓에 정권과 검찰 주류 세력으로부터 견제당하거나 배척당했다는 것인데, 언론에 많이 보도된 바 화려한 수사 이력을 보면 일리가 있다.
조은석과 윤석열의 성격은 판이하다. 조은석은 매사 신중하게 행동하는 외유내강형이다. 사교에도 별 관심이 없어 사람을 가리고 공사 구별이 확실한 편이다. 반면 털털하고 거친 윤석열은 남 눈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윤석열을 집무실에서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당시 녹음파일을 들어보면 욕설과 비속어가 툭툭 튀어나온다. 골목대장처럼 후배 검사들을 끌고 다니기를 즐기고, 자기 식구들을 확실히 챙기는 의리파로 통했다. 음주를 즐기지 않는 조은석과 달리, 윤석열은 두주불사형으로 검찰 내 대표적인 ‘주사파’였다.
수사 스타일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검사 시절 둘 다 강한 소신과 추진력, 돌파력을 인정받았으며, 수사 외압에 굽히지 않는 강골 검사라는 평을 들었다. 언론 친화적이라는 점도 닮았다. 윤석열은 언론이 영웅으로 만들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기자들, 특히 보수 성향 기자들과 친분이 깊었고, 이를 수사에 적극 활용했다. 조은석은 특유의 유연함과 친화력으로 보수 진보 기자들과 두루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비주류인 그가 2009년 대검 대변인을 꿰찬 것도 출입기자들의 강력한 추천 덕분이었다.
계산이 빠르고 법리에 밝은 조은석은 윤석열의 거친 수사 스타일을 싫어한다.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만 해도, 당시 수사팀장 윤석열이 밤에 상급자인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 집에 찾아가 체포영장 결재를 촉구한 것은 적절하지도 효과적이지도 않은 수사방식이었다고 지적한다. 일이 되게 하려면 중앙지검장을 압박할 게 아니라 그 밑의 차장검사부터 설득하는 등 우회적인 돌파구를 찾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윤석열의 승부수였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부 비리 수사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수사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전자는 장관 후보자 검증이라는 명분은 있지만 권력에 취한 검찰의 정치 행위이고, 후자는 검찰을 망친 무모하고 감정적인 수사라는 게 조은석의 평가다.
특수통 검사들은 대체로 검찰주의자다. 조은석도 예외가 아니다. 다만 결이 다르다. 윤석열이 완고한 검찰주의자라면 조은석은 유연한 검찰주의자라고나 할까. 검찰개혁에 대한 시각만 해도 큰 차이가 있다. 윤석열은 검찰개혁의 핵심인 수사-기소 분리에 절대 반대한다. 수사의 주체는 검사이고, 수사를 한 검사가 기소까지 맡는 게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반대한다는 명분으로 검찰총장직을 내던질 정도로 검찰 권한이나 위상 축소에 생래적 거부감을 보였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시절, 한상대 검찰총장의 중수부 폐지 방침에 반기를 든 대검 간부들의 집단행동에 앞장선 것도 그런 맥락이다.
지난해 12월 3일 대통령 윤석열은 불법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검찰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것은 조은석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검찰권 남용과 정치검찰의 폐해를 인정하기에 검찰개혁 취지에 공감하는 편이다. 무엇보다도 수사-기소 분리에 반대하지 않는다. 국민 여망과 시대적 흐름에 비춰 검찰도 변할 때가 됐다는 대세론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다만 검찰의 직접수사권은 폐지하되 1차 수사기관인 경찰에 대한 지휘기능은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검찰 본연의 임무인 기소와 공소 유지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도 수사기관에 대한 법률적 통제와 감독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검찰개혁 소신이다.
검찰을 떠난 후 다시 볼 일 없을 것 같던 두 사람은 윤석열 검찰정권에서 뜻하지 않게 충돌했다. 조은석은 문재인 정부 후반기에 4년 임기의 차관급인 감사원 감사위원으로 임명됐다. 당시 그를 적극 추천한 최재형 감사원장은 월성원전 감사 논란으로 사직한 후 2022년 3월 서울 종로 보궐선거에 국민의힘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윤석열 정권이 출범했지만, 임기가 보장된 조은석은 감사위원직을 유지했다.
윤석열 정권의 김건희 의혹 은폐 과정을 지켜보면서 내심 분노하던 조은석의 ‘야성’을 폭발시킨 것은 감사원의 정치적 감사였다. 조은석은 국회에 나와 전현희(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전 국민권익위원장 표적 감사의 불법성을 폭로함으로써 대통령의 친위부대로 전락한 감사원 수뇌부와 정면 대립했다. 사실상 현직 대통령에 대한 항명이었다. 이후 ‘조은석 털기’가 진행됐다. 업무와 동선 감시는 기본이고, 비공식적인 통신 조회와 계좌 추적 등 위협적 조치가 이어졌다. 조은석은 조금이라도 책잡힐 일을 만들지 않으려 공적 업무 외에는 외부인 접촉을 삼갔다고 알려진다.
돌이켜 보면 조은석와 윤석열의 대결은 운명적인 면이 있다. 전현희 표적 감사 문제로 정권의 표적이 된 조은석이 12.3 비상계엄 이후 도리어 칼자루를 쥐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탄핵 소추로 최재해 감사원장의 직무가 중지된 것이 계기였다. 감사원장 권한대행을 맡은 조은석은 대통령 관저 건물 공사비 대납 의혹과 관련해 검찰에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수사를 의뢰하는 한편, 대통령실과 관저 이전 감사 결과에 대한 재심 검토를 지시했다.
이런 이력 덕분인지 조은석은 일찌감치 내란 특검으로 내정됐다. 언론에 특검 후보로 다른 사람과 함께 거론될 때 이미 확정된 상태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사이에도 조율이 이뤄졌다. 내정 통보를 받은 조 특검은 민주당 측에 “더 적절한 사람을 찾아보라. 정 마땅한 사람이 없다면 맡겠다”는 의견을 전했다. 사상 최대 규모인 내란 특검은 파견 검사와 수사관이 최대 60명, 100명에 이른다. 수사력 못지않게 통솔력과 조직 장악력이 중요하다. 이 점에서 조 특검은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국회에서 추천하자마자 이재명 대통령이 곧바로 그를 임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특검이 수사 진용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추가 기소하는 방식으로 재구속한 데 이어 예상보다 빠르게 윤 전 대통령을 소환하자, 일부에서는 “여론을 의식해 너무 서두르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 특검은 임명 전에 이미 개인적으로 비상계엄 전 과정에 대한 분석과 평가를 마쳤다. 민주주의를 파괴한 국헌 문란 목적의 내란이 분명하다는 게 그의 결론이었다. 조 특검은 평소 윤석열을 “검찰을 망친 장본인”이라고 비판했는데, 비상계엄 이후에는 정상인으로 보지 않는다고 한다.
특검팀이 수사 초기부터 내란 못지않게 외환 혐의에 비중을 두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조 특검은 일찍이 평양에 무인기(드론)를 날린 사건을 예사롭게 보지 않고 관련된 정황증거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된 감사원 정보나 자료를 확보했다는 관측도 있다. 서울고검에 특검 사무실을 차린 것도 외환 혐의 수사에 따른 기밀성과 보안성 때문이라는 게 조 특검의 설명이다. 진보 진영의 일부 대형 스피커들이 검찰과의 야합 의혹을 제기하며 비판한 데 대해 조 특검은 “진영논리로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수사 방향을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고 답답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북한이 관련된 무인기 문제는 고도의 보안이 필요하기에 애초 후보지로 검토했던 정부 과천청사나 서대문경찰서보다는 촬영이나 도청 등에서 자유로운 서울고검 청사가 적합하다는 논리다.
조 특검은 자신의 페이스대로 진행되고 있다며 현 수사 상황에 만족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출석 조사를 강행한 데 대해서는 “적절한 속도를 유지할 것”이라며 “향후 여러 변수가 있는 만큼 일단 진술을 받아놓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구속영장 청구와 관련해서는 “법원만 이상하지 않으면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고 한다.
내란 특검 수사는 향후 정치권 판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구여권 유력 인사들이 내란 동조자로 잔뜩 체포되면 비상계엄 당시 이중적이고 기만적인 태도를 보인 국민의힘은 창당 이래 최대 위기에 빠질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특검팀 의지에 달렸다.
지금까지는 비교적 잘한다는 평이 우세하지만, 최장 170일인 수사 기간 내에 무슨 변수가 발생할지 모른다. 내란 특검이 국민적 스트레스인 윤석열 트라우마를 날릴지도 관심사다. 뭐든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진영논리는 진실을 가리고 허상을 만든다. 특검에 대한 응원 못지않게 감시와 견제가 필요한 이유다. 내란 특검의 첫 시험대가 될 ‘윤석열 구속’ 여부 결정은 오늘(9일) 밤 늦게 나온다.
뉴스타파 조성식 blueink@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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