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게임', 한류 변방에서 재계의 중심으로]

[편집자주] K 콘텐츠의 세계적 위상이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지만 한류를 이끄는 주역 '게임'은 소외받고 있다. 드라마, 영화, K 팝 등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는 사이 게임 산업은 묵묵히 수출과 고용, 글로벌 점유율에서 콘텐츠 산업의 주축으로 성장했다. 게임을 놀이로 보는 시각은 만연하고 규제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실정이다. K 컬처의 선봉장으로 국위선양에 이바지하는 국내 게임 산업을 재조명 할 때다.

대한민국 콘텐츠 산업을 견인하고 있는 게임 산업이 여전히 제도와 인식의 사각지대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인터넷 게임 관련 그래픽. /사진=챗GPT 제작

대한민국 콘텐츠 산업을 견인하는 게임 산업이 제도와 인식의 사각지대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막대한 수출 성과를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게임은 공공 정책에서 배제되거나 도박·유흥업과 동일선상에 놓이는 경우도 있다. 산업적으로는 '수출 효자'로 평가받으면서도 규제 측면에서는 '중독 유발'의 위험 요소로 분류된다.

최근 경기도일자리재단은 '주 4.5일제 시범사업 참여기업 모집' 공고에서 게임 산업을 지원 제외 대상으로 공지했다. 재단은 모집 공고의 예외조항에서 게임을 도박, 유흥 등 사행성·불건전 소비 업종과 함께 지원 제외 대상으로 명시하며 게임산업이 건전하지 않다고 봤다.

성남시중독관리지원센터가 주관한 인공지능(AI) 기반 콘텐츠 공모전에서도 논란이 일었다. 해당 공모전은 '4대 중독 예방'을 주제로 삼았는데 그 항목으로 ▲알코올 ▲약물 ▲도박 ▲인터넷 게임을 꼽았다. '4대 중독'이라는 표현은 2013년 박근혜 정부 시절, 당시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이 게임을 알코올·도박·마약과 함께 중독 유발 요소로 분류하며 처음 등장했다. 

공공기관이 거듭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드러내면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의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 등재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경기 성남시의 '게임=중독' 공모전 포스터 이미지로 현재는 수정된 상태다. /사진=성남시

공공기관이 거듭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드러내면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의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 등재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통계청은 이르면 올해 말 제10차 KCD 초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보건복지부도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본 국제질병분류 제11차 개정판(ICD-11)을 채택한 후 해당 내용을 KCD에 반영하려고 한다.

이러한 결정이 게임 산업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우려스럽다. 게임이 공식적으로 질병으로 분류되면 학부모 단체를 중심으로 '게임 제한 입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수 있고 일방적으로 병리학적 대상에 규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게임이 사행 산업 혹은 공공의 위험 요소로 간주되는 것은 관련 산업 성장과 글로벌 경쟁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 불가피하다.

국내 게임 산업 매출액이 23조원을 넘어서고 한국 콘텐츠 산업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관련 산업 전반에 미치는 파장은 좌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보고서를 통해 "게임이 질병으로 분류될 경우 경제적 피해가 약 8조8000억원에 이를 수 있다"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경고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게임 과몰입 문제를 단순히 게임 자체의 병리적 현상으로 규정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게임 과몰입 현상은 개인의 심리뿐 아니라 가족환경, 사회적 고립, 경제적 여건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문제다. 이를 게임 자체의 병리성으로 환원하는 접근은 문제 해결보다는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국내에서 게임을 도박 및 마약 같은 중독물질로 간주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된 바 있다. 지난해 7월3일, 한덕현 중앙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4년에 걸쳐 100명의 20대 게임 이용자 뇌를 MRI(자기공명영상)로 촬영해 분석한 결과 게임이 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근거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KCD 개정 초안 공개까지 불과 4개월 남짓 남은 상황에서 게임 담당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어떤 입장을 보일지가 게임 산업의 미래를 가를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업계는 정책·제도의 과학적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단순한 이용 시간이나 통계를 넘어 이용자의 심리·사회적 배경, 기존 규제의 효과 등을 아우르는 정밀한 실태조사와 업계 소통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정태 더불어민주당 게임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은 "보건복지부나 일부 지자체에서 발생했던 게임에 관한 오해나 과도한 규제 시도가 바로잡히길 기대한다"며 "게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문체부는 산업계와 긴밀히 협의하고, 게임을 악마화하거나 낙인찍으려는 시도에 대해 함께 대응하기 위한 협의체 구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성아 기자 tjddk9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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