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전선 일부 구역서 NLL 부근 아닌 MDL 3~4m 남쪽 침범 장벽 설치 의혹
국군은 미국 개발 ‘GPS’, 북한군은 러 ‘GLONASS’ 사용 좌표 서로 달라
전방감시부대 MDL 침범 보고했으나 합참, 특별한 대응 지침 안내려
북한군이 지난해 비무장지대(DMZ)에 건립한 대전차 방벽. 합참 제공
북한군이 지난해 군사분계선(MDL) 국경선화 및 요새화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MDL을 11차례 침범해 남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가운데 북한군이 서부전선 일부 구역에서 북방한계선(NLL) 부근이 아닌 MDL 3~4m 남쪽을 침범해 장벽을 설치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전방 감시부대에서는 북측의 MDL 침범 장벽을 상부에 보고했으나 합참은 특별한 대응 지침을 내리지 않은 것으로 전해져 논란이 일고 있다.
합동참모본부가 지난 7월 9일 국회 국방위원회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북한군은 지난해 6월 이후 MDL 인근에서 총 11차례에 걸쳐 지상 도발을 반복했다. MDL 침범 지역은 경기 연천과 강원 철원·화천·인제·고성 등이다. MDL 침범 사례를 월별로 보면 지난해 6월(4회), 8월(1회), 9월(2회), 10월(2회), 올해 4월(2회) 발생했다. 합참은 이 가운데 작전 상황 등을 고려해 3건만 공개했다고 밝혔다.
2024년 6월 비무장지대(DMZ)에서 작업 중이던 북한군 다수 인원이 지뢰 폭발로 다치거나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군 당국이 18일 밝혔다. 사진은 전선지역에서 대규모 병력 투입돼 작업 중인 북한군. 합동참모본부 제공
합참은 북한군의 MDL 침범 행위 대부분이 2015년 목함지뢰 사건과 같은 계획된 도발보다는 ‘실수’에 무게를 두고 있다. MDL에는 철책이 없고 푯말로 경계를 표시하는데 풍화로 인해 잘 식별되지 않는 푯말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 분석이다. MDL 표식은 동서 248㎞ 구간에 100~300m 간격으로 박혀 있는 푯말 1292개다. 휴전 이후 풍화로 푯말을 식별하기 쉽지 않고, 북한군이 푯말과 푯말 사이 MDL을 구분하기 힘든 구간에서 MDL을 넘는 경우가 있다는 게 합참의 평가다.
설상가상으로 남북을 가르는 MDL 푯말과 푯말 사이 군사분계선을 정확하게 구분하는 기준에 대해 남북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현실적 어려움도 고려된 측면이 있다. 국군과 북한군이 사용하는 위성항법체계가 서로 다르다. 국군은 미국이 개발한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를, 북한군은 러시아가 만든 ‘GLONASS(글로나스)’를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특정 지점의 정확한 좌표를 놓고 GPS와 글로나스가 각각 다르게 가리키는 경우가 발생한다.
실제로 이런 사례는 과거 9·19 군사합의에 따른 남북 GP(감시초소) 철수 때 발생했다. 남북은 2018년 12월 시범 철수가 계획된 GP에 대한 상호 현장검증을 위해 군사분계선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만나는 위치를 놓고 남측의 GPS 좌표와 북측의 글로나스 좌표가 달라 만나는 지점을 특정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황색 수기였다. 당시 남북은 가로 3m, 세로 2m의 대형 황색 깃발로 현장검증반 반원들과 상대측 안내요원들이 만날 군사분계선 지점을 표시했다. 그런 후 남북 검증요원들은 임시 통로를 통해 각각 상대 측 현장검증 GP로 이동했다.
풍화로 인해 잘 식별되지 않는 푯말도 늘어나고 있다. 남측은 푯말을 찾기 힘든 지역의 경우 유엔사가 1953년 작성한 군사지도를 참조해 MDL을 구분했다. 그러나 축적 지도상에 그어진 선 하나가 실제 지형에서는 폭이 50여m나 돼 구분에 어려움을 겪었다. 유엔사는 1953년 이후 65년 만인 2015년 MDL을 표시한 군사정밀지도를 다시 작성했다. 그러나 이 역시 10여년이 지나 휴전선 일대 지형이 변화하면서 정밀하게 현장을 반영하기는 어려움이 있다.
더군다나 북한군은 위성항법체계를 사용하지 않고 어림짐작으로 MDL 인근에서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아 우발적으로 MDL을 침범할 소지가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남측은 그때마다 경고방송과 경고사격을 해야 하지만 북한군이 애매하게 MDL 부근에서 작업을 하면 남북 간 우발적 군사 충돌을 우려해 대응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북한군은 2023년 12월 30일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남북 단절’ 지시에 따라 지난해 4월부터 전방에서 국경선화 및 요새화 작업을 진행했다. 최근까지 북한군은 최전방 MDL(군사분계선) 인근 6곳에서 하루 기준 수천명 병력을 동원해 도로와 교량 설치, 지뢰 매설, 나무 제거(불모지화), 콘크리트 방벽 및 철조망 장벽 설치 등 국경선화 작업을 했다.
북한군은 대전차 방어벽도 북방한계선 북한 지역에 설치했다. 앞서 북한군은 총참모부 보도문을 통해 “‘주권 행사 영역’과 대한민국 ‘영토’를 철저히 분리하기 위한 실질적인 군사적 조치를 취하겠다”면서 “대한민국과 연결된 북측 도로·철길을 완전히 차단하고 견고한 방어축성물들을 건설해 ‘요새화 공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정충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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