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지훈의 연극 읽기] 극단 기일게의 신작 연극 굿피플>
[안지훈 기자]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 데이빗 린제이-어베어의 <굿피플>이 한국 관객과 만나고 있다. 그간 영미권 연극을 다수 작업하며 호평을 받아온 극단 기일게를 통해서다. <굿피플>은 2011년 뉴욕 비평가회에서 베스트 연극으로 선정된 후 영국, 독일, 호주 등에서 공연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올해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7월 11일부터 7월 27일까지 대학로 씨어터 조이에서 공연을 진행한다.
굿 피플(good people), 직역하면 '좋은 사람'이라는 의미다. 우리는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길 바라고, 또 좋은 사람과 관계 맺길 바란다. 그런데 좋은 사람이라는 표현이 막연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구체적으로 좋은 사람의 기준이 무엇인지, 어떤 사람이 그 기준에 부합하는지 정해진 게 없다.
연극 <굿피플>은 바로 이런 '좋은 사람의 문제'를 다룬다. 그렇다고 해서 좋은 사람을 정의하거나 조건을 나열하는 연극은 아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일상을 그려내면서 그 속에서 관객들이 직접 좋은 사람이란 무엇인지 질문하게 한다. 그 질문은 설사 답을 내지 못하더라도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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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굿피플> 공연 사진 |
ⓒ 극단 기일게 |
'좋은 사람'이라는 질문
달러 숍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는 '마가렛'과 관리자 '스티비'의 대화로 연극은 시작된다. 지역 매니저는 마가렛이 자주 지각한다는 이유로 스티비에게 마가렛을 해고할 것을 지시한다. 마가렛은 발달장애를 가진 딸을 홀로 키우는 탓에 지각을 자주 할 수밖에 없었고, 사정을 아는 스티비는 이제껏 마가렛을 옹호했다.
하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다. 스티비는 더 이상 마가렛의 사정만 봐줄 수 없고, 쓴 웃음을 지으며 마가렛에게 해고를 통보한다. 당장 월세 낼 돈도 빠듯한데 일자리마저 잃은 마가렛은 스티비를 매정하게 생각한다. 이 순간 묻게 된다. 스티비는 좋은 사람, 굿 피플이 아닌 건지.
'도티'는 마가렛의 집주인이자 절친한 사이다. 하지만 아들과 며느리가 동시에 일자리를 잃고 살던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월세를 내지 못하는 마가렛 대신 아들 부부를 집에 들일까 고민한다. 마가렛의 눈에 도티가 매정하게 보일 것이다. 자신의 처지를 뻔히 알면서도 갈 곳 없는 자신을 내치려는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도티의 선택은 냉정하지만 합리적이다. 이런 도티를 좋은 사람, 굿 피플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상황이 나빠진 마가렛은 오래 전 교제했던 연인이자 지금은 의사가 된 '마이크'를 찾아간다. 병원에 적당한 일자리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하지만 마이크의 병원에는 현재 신규 채용 계획이 없다. 마가렛은 딱한 사정을 이야기하며 거듭 부탁하고, 마이크의 지인들이 참석하는 파티에 일자리를 구할 목적으로 참석하겠다고 한다.
마이크는 흔쾌히 마가렛을 초대하지만, 제3자 입장에서 볼 때 마가렛의 행동이 탐탁지는 않다. 어쨌든 일자리를 부탁하며 오랜만에 만난 지인을 난처하게 만들었고, 일자리를 구할 목적으로 파티에 참석하겠다고 하니 말이다. 이 순간 다시 질문하게 된다. 마가렛을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나쁜 사람이라고 여길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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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굿피플> 공연 사진 |
ⓒ 극단 기일게 |
'좋은 사람'을 향한 불편한 통찰
좋은 사람의 조건이 좋은 선택이라면, 이들을 좋은 사람이라고 보기 어렵다. 스티비는 마가렛을 궁지에 몰아넣는 선택을 했고, 도티 역시 마가렛의 딱한 사정을 외면하려 했으며, 마가렛은 마이크를 일면 난처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상의 사례들에서 특정 인물이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쉽게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들에게 그럴 듯한 '선택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스티비는 직장과 상사가 요구하는 가운데 마가렛을 마냥 옹호할 수 없다. 도티도 자신의 아들이 위기에 처했는데 친구보다는 아들에게 마음이 가는 게 당연하다. 궁지에 몰린 마가렛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곳저곳 자존심을 버린 채 도움을 청하고 다닌다. 이들은 나름 최선의 선택, 어쩌면 유일한 선택을 한 셈이다.
이들에 비해 선택지가 많은 사람은 의사 마이크와 그의 아내 케이트다. 마이크는 케이트의 아버지 밑에서 인턴 생활을 했고, 케이트는 의사의 딸이자 대학의 교수로 번듯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둘은 불쑥 찾아온 마가렛을 환대하고, 마가렛이 비아냥대거나 무례한 농담을 던져도 부드럽게 대꾸한다.
타인의 선택이나 행동이 마이크와 케이트의 실존을 위협하진 않는다. 자신이 무엇을 선택하든 삶이 쉽게 무너지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타인의 반응에 덜 취약하다.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는 시늉을 해도,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에게 친절을 베풀어도 이들의 삶은 굳건하다. 심지어 마가렛이 부부 관계를 갈라놓을 수 있는 치명적인 거짓말을 했음에도 케이트는 침착하고 친절하게 대응한다.
마이크와 케이트의 심성이 훌륭해서 좋은 선택을 하고, 그렇게 좋은 사람으로 보여질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들이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것이 전적으로 고운 심성 덕분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이 지닌 계급적 특권은 이들을 좋은 사람으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연극은 누가 좋은 사람이고, 누가 나쁜 사람인지 정의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알려주지도 않는다. 다만 개인의 의지와 노력, 타고난 인품만으로 좋은 사람이 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달리 말해 좋은 사람을 만드는 사회·경제적 환경이 있을 수 있음을 주장한다.
한편 연극 <굿피플>은 정윤경(마가렛 역), 이승헌(스티비 역), 이정미(도티 역), 이주희(진 역), 이종무(마이크 역), 윤소희(케이트 역)가 원 캐스트로 출연하며 만들어간다. 연출은 서울연극제 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는 신명민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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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굿피플> 공연 사진 |
ⓒ 극단 기일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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