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부당해고' 5년 만에 피해 노동자와 합의한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로 확인됐다. 지난 2020년, 쿠팡은 자사 물류센터의 열악한 코로나19 방역 실태 등을 비판한 노동자 2명을 해고했다. 또 이들 노동자가 부당해고 소송을 걸자 '정당한 해고'라며 약 5년간 소송을 끌어 왔는데, 뒤늦게 합의한 것이다.
쿠팡이 부당해고 노동자와 합의한 사실은 그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취재 결과, 합의문에는 '합의 사실과 내용을 외부에 절대 알리지 않는다'는 조항이 담긴 것으로 파악됐다.
회사 비판한 물류센터 노동자, '허위 사실 유포'로 몰아 해고 강행
지난 6월 4일, 서울고등법원 제1-3민사부는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 강 모 씨와 고 모 씨가 쿠팡풀필먼트(물류센터 운영 계열사)를 상대로 낸 해고 무효 확인 소송 2심에서 '화해 권고 결정'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지난해 6월 13일, 1심 법원이 부당해고인정 판결을 내린지 약 1년 만이다. 당시 쿠팡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강 씨와 고 씨는 경기도 부천시에 있는 쿠팡 물류센터 계약직 노동자였다. 이들은 2020년 5월, 부천 물류센터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하자 쿠팡을 비판했다. 쿠팡 사측이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사실을 노동자들에게 뒤늦게 알렸고, 감염 위험이 남은 상태에서 물류센터 업무를 재개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실제 쿠팡은 2020년 5월 24일 오전 보건당국으로부터 '확진자 2명 발생' 사실을 통보받고도 부천 물류센터를 즉각 폐쇄하지 않았고, 당일 저녁 업무를 재개해 노동자들을 출근시켰다. 저녁 근무자들은 확진자 발생 사실도 안내받지 못한 상태였다. 이후 부천 물류센터에서는 152명의 추가 감염자가 발생했다.
이에 강 씨와 고 씨는 부천 물류센터 직원 단체 대화방에서 수차례 문제를 제기했고, 언론 인터뷰에도 응했다. 그러자 쿠팡은 2020년 7월 강 씨와 고 씨에게 계약갱신 거절을 통보했다.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해고한다는 뜻이었다. 그해 9월 강 씨와 고씨는 쿠팡을 상대로 해고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20년 5월 28일 SBS 보도. 쿠팡 부천 물류센터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지만, 쿠팡은 계속 직원들을 출근시켰다는 내용이다.
재판 지연의 반복... '부당해고 1심 판결'까지 3년 9개월
소송 과정에서 쿠팡은 강 씨와 고 씨의 평소 근무 실적과 행태 등은 전혀 지적하지 않았다. 이들은 근무평가표상 상위권에 해당했다.
쿠팡이 제시한 해고 사유는 '회사를 비판했다는 것' 하나였다. 쿠팡은 법원에 낸 서면에서 강 씨, 고 씨가 업무 대화방, 기자회견, 언론사 인터뷰에서 허위사실을 유포해 사측을 부당하게 비난하고 사원들을 선동했다며 해고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1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는 약 4년이 걸렸다. 쿠팡이 시간을 끌었고, 재판부도 선고를 미뤘다. 재판이 1년 넘게 진행된 뒤인 2022년 5월 19일, 재판부는 변론기일을 종결하고 그 다음달인 6월 23일로 선고기일을 잡았다. 그러나 선고 약 1주일 전 쿠팡이 변론재개 신청서를 제출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선고가 미뤄졌다. 이후에도 선고기일은 지정됐다 변경되기를 반복했고, 그사이 법원은 정기 인사로 재판부를 교체해 재판 지연이 계속됐다. (관련 기사 : 쿠팡 '부당해고' 소송 1심만 3년 5개월째...법원의 수상한 선고 연기)
차일피일 재판이 지연되는 동안 강 씨와 고 씨는 생활고에 시달렸다. 당시 강 씨는 뉴스타파와 통화에서 "우리에게 포기하라고 하는 것 같다. 언제 끝날지 모르겠는 심정에 막막하다"고 토로하기까지 했다.
1심 선고는 소송을 제기한 지 무려 3년 9개월이 지난 2024년 6월 13일에야 나왔다. 1심 법원은 원고인 강 씨와 고 씨의 손을 들었다. 재판부는 "쿠팡이 제출한 증거들만으로 강 씨, 고 씨와 근로계약 갱신을 거절한 것에 대한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보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부당해고 인정 판결을 내렸다.
또 "쿠팡의 방역 조치는 부천 물류센터의 상황에서 충분하지 못한 조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 강 씨, 고 씨의 단체 대화방 게시 내용, 기자회견 및 언론사 인터뷰 내용이 허위사실이라고 보기 어렵다. 근로조건의 유지 개선과 근로자 복지 증진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근로자의 정당한 활동 범위에 속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관련 기사 : '코로나 방역 비판' 쿠팡 노동자들, 부당해고 소송 4년 만에 1심 '승소')
지난해 6월 17일,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와 쿠팡 과로사 대책위원회 등이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있는 쿠팡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쿠팡의 사과와 해고 노동자 복직을 요구하는 모습.
1심 판결 불복한 쿠팡... "쿠팡 책임 있다"는 민사 판결 나오자 '합의'
쿠팡은 1심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즉각 항소했고, 언론에는 "강 씨, 고 씨는 정당한 사유로 해고했다"는 입장을 냈다.
항소심에서도 쿠팡은 기존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법원이 사건을 조정에 회부했지만, 결렬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사이 중요한 판결이 나왔다. 지난 1월 15일, 쿠팡 부천 물류센터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됐던 노동자 전 모 씨가 낸 손해배상청구 민사소송에서 법원이 쿠팡 측 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해고 무효 확인 소송에 이어 이번에도 법원은 쿠팡의 방역, 노동자 보호 조치에 문제가 있었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쿠팡이 작업환경 개선을 위해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보호 의무 또는 안전배려 의무를 위반한 과실이 인정된다. 쿠팡의 의무 위반으로 전 씨가 물류센터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됐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쿠팡은 항소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전 씨와 합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상황에서 물류센터의 미흡한 코로나19 방역 조치를 비판한 강 씨, 고 씨 해고의 정당성을 계속 주장하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2심 소송이 진행 중이던 지난 5월, 쿠팡은 화해 의사를 밝힌 것으로 파악됐다. 소송을 끝내는 대가로 강 씨, 고 씨에게 합의금을 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합의문에 '입막음 조항'... 쿠팡이 넣었나
결국 6월 4일 재판부가 화해 권고 결정을 내렸고, 양측 다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같은 달 20일 화해가 확정됐다. 5년에 걸친 소송도 종결됐다. 사실상 부당해고가 최종 인정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그동안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합의 후 한 달이 넘도록 기사 하나 나온 게 없었다. 강 씨, 고 씨를 지원했던 노동·시민단체에서도 관련 사실을 전혀 공표하지 않았다. 1심 판결 직후 여러 기사가 나오고, 기자회견도 열렸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취재 결과, 쿠팡과 두 노동자가 날인한 합의문(화해 권고 결정문)에는 '합의 사실과 내용을 외부에 일절 알리지 않는다'는 조항이 담긴 것으로 파악됐다.
화해 절차에서 합의문의 작성 권한은 재판부에 있다. 소송 당사자들은 재판부가 작성해 보낸 합의문을 수용할지 말지만 결정할 수 있다. 다만, 논의가 오가는 과정에서 소송 당사자들은 법원에 '특정 조항을 합의문에 넣어 달라'는 등의 요구 사항을 전달할 수 있다.
노동 사건을 여럿 다뤄 온 한 변호사는 "부당해고나 산업재해 소송에서 재판부가 비밀 유지 조항을 선제적으로 합의문에 넣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사건이 알려지지 않길 원하는 소송 당사자가 대게 먼저 요구를 한다"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쿠팡에 질의서를 보내 ▲강 씨, 고 씨와 합의한 이유가 무엇인지 ▲두 노동자에 대한 해고가 여전히 정당했다고 판단하는지 ▲합의문에 있는 비밀 유지 조항은 쿠팡의 요구로 들어간 것인지 물었다. 쿠팡은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뉴스타파 홍주환 thehong@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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