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때문에 기록관 건립 좌초…냉동 물류센터 건물 5년 임차
보장원 "항온항습 등 설비 마쳐"…입양인 단체 "보존 환경 우려"

입양기록 26만권 보관할 고양 임시서고 개관 (고양=연합뉴스) 김병만 기자 = 23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한 저온 물류센터 건물 내 '입양인 뿌리'인 입양기록 26만권을 한곳에 보관할 임시서고 내부 모습. 아동권리보장원은 서가 면적 약 670평, 작업공간 201평, 사무실 71평 등 규모로 항온항습기 등 설비를 갖췄다고 설명했다. 2025.7.23 kimb01@yna.co.kr

(고양=연합뉴스) 김다혜 기자 = 23일 낮 경기 고양시의 한 물류센터. 건물 밖 온도는 31도를 웃돌았고 습도도 70%에 육박했지만 4층 입양 기록물 임시 서고 내부는 온도 24.2도, 습도 51%로 훨씬 서늘했다.

아동권리보장원 관계자는 "지금은 취재진 공개를 위해 서고 문을 열어두어서 온도가 다소 높지만, 기록물을 보관할 때는 온도를 공공기록물법 시행령상 기준에 맞게 20∼22도로 관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입양인들의 기록을 한데 모아 보관할 임시 서고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오금동의 5층짜리 저온 물류센터 4층에 둥지를 틀었다.

서가 면적 약 670평, 분류 등을 위한 작업공간 201평, 사무실 71평 등 전체 1천472평 규모다.

보장원은 시설 준비를 마치고 기록물을 이관받기에 앞서 이날부터 이틀간 언론과 입양인 단체에 서고를 공개하기로 했다.

해당 건물이 냉동 물류창고 목적으로 지어진 곳이어서 오래된 입양 서류를 안전하게 보관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우려가 제기되자 이를 해소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고양 물류센터에 마련된 입양기록물 임시서고 (고양=연합뉴스) 김다혜 기자 = 23일 아동권리보장원의 입양기록물 임시 서고에 마련된 서가(왼쪽부터), 스캔실, 상담실. 2025.7.23

건물 자체는 화물차에서 짐을 내려 옮기기 쉽게 설계된 전형적인 물류 창고였지만 아주 차가운 냉기를 느끼기는 어려웠다.

냉동 창고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건물인 건 맞지만 해당 기능을 조절할 수 있고 임시 서고로 운영하는 동안에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게 보장원의 설명이다.

한명애 보장원 입양사업본부장은 "쿠팡 물류센터로 알려졌지만, 쿠팡은 옥상 주차장만 이용하고 있다"면서 "4층은 2022년 건축 후 임대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 본부장은 "전국 40여곳 시설을 직접 조사했으나 대부분이 하중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고 공장형 지식산업센터는 여러 임대인과 계약해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했다"면서 "입양인 접근성을 고려하면서 하중 기준 등에 부합하는 곳을 찾다 보니 이곳을 선정하게 됐고 안전 진단을 마친 후 (2030년 5월까지 5년의)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고 부연했다.

고양 물류센터에 마련된 입양기록물 임시서고 (고양=연합뉴스) 김다혜 기자 = 23일 아동권리보장원의 입양기록물 임시 서고가 마련된 경기 고양시 덕양구의 한 물류센터. 2025.7.23

서가에는 냉방 등 기능을 갖춰 실내 온도·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주는 항온항습기 4대와 60만권을 수용할 수 있는 이동식 책장 등이 구비돼 있었다.

정보공개를 청구한 입양인에게 기록 사본을 온라인으로 보내주는 데 필요한 스캐너, 직접 원본을 확인하기를 원하는 입양인들을 위한 상담실 등도 마련됐다.

다만 살균 처리를 위한 소독기, 산성 제거를 위한 탈산 장비 등은 아직이었다. 보장원은 두 장비가 각각 올해와 내년 중 구비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향후 별도 처리가 필요한 기록물을 선별해 소독·탈산 작업을 진행하게 된다.

항온항습기도 서고 면적을 고려하면 총 6대가 필요하지만 예산이 부족해 아직 4대만 마련됐다.

가스식 소화 설비도 아직인데, 이달 중 구비할 예정이라고 보장원은 밝혔다.

입양기록 26만권 운영 설명하는 아동권리보장원 (고양=연합뉴스) 김병만 기자 = 23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한 저온 물류센터 건물에서 아동권리보장원 기록물관리 책임자 한명애 본부장(가운데) 등이 기자회견을 열고 입양 기록물 원본을 이관·보존할 시설 운영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2025.7.23 kimb01@yna.co.kr

입양기록 긴급행동 등 입양인 단체들은 "건물 자체가 거대한 냉장고"인 냉동창고는 입양물 보존에 적합한 환경이 아니라며 온·습도가 제대로 통제될지 우려하고 있다.

불이 나 스프링클러가 작동하면 입양 서류가 물에 젖을 수 있다는 점,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 등도 문제로 지적한다.

보장원은 기록물은 방수 기능이 있는 박스에 넣어 보관할 예정이고, 물리적으로 임시 서고 방문이 어려운 입양인이 기록 원본을 열람하기를 원하는 경우 기록을 반출해 서울 중구에 있는 보장원 사무실에서 기록을 열람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서고에는 민간 입양기관이 보관해온 수십년간의 기록, 아동이 입양 전 거쳤던 양육시설에서의 기록, 친생부모의 편지와 배냇저고리 등 관련 물품이 모두 보관될 예정이다.

당장 8개 입양기관과 일부 아동양육시설이 보유한 약 26만권 이상의 기록물이 다음 달부터 서고로 옮겨진다. 9월 초까지 이관을 마치는 것을 목표로 각 기관에서 검수 및 박스 포장 등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보장원 관계자는 대략 입양인 한 사람당 1권의 기록이 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국내외 25만여 입양인의 역사가 통째로 옮겨지는 셈이다.

내년에는 최소 70여개 아동양육시설 등이 보유한 입양 관련 기록물을 추가로 이관하고 2027년부터는 지방자치단체와 기타 시설의 입양 관련 기록물을 단계적으로 이관한다.

보장원은 민간 기관이 기록을 조작하거나 누락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안전한 이관을 위해 전문 용역업체를 선정했고 보장원 직원도 상시로 현장에 나가서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전문기록사도 채용해 함께 이관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보장원은 지난 19일부터 시행된 국내입양 특별법에 따라 입양 기록을 통합 관리하고 입양인들의 정보공개 청구에 답하는 업무를 전담할 예정이다. 이관 작업을 위해 일시 중단된 정보공개 청구 접수는 9월 16일 재개된다.

해외 입양인들의 호소 (고양=연합뉴스) 김병만 기자 = 23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한 저온 물류센터 건물 입구에서 해외 입양인 단체인 '입양기록 긴급행동(EARS)과 아동권리연대 회원들이 입양 기록물에 관한 입장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 네덜란드 등 해외에서 직접 방문한 입양인들이다. 2025.7.23 kimb01@yna.co.kr

한 본부장은 "앞으로 입양기록은 국가와 보장원이 직접 책임지고 관리한다"며 "입양인의 알 권리 보장과 입양 제도의 투명성, 신뢰를 높이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또 "향후 안정적이고 체계적인 기록물 보존 관리를 위해 전문화된 시설, 즉 입양기록관 건립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장원은 2023년 타당성 연구를 거쳐 340억원의 예산을 들여 기록관을 짓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좌초됐고 약 23억원의 예산으로 임시 서고를 구축했다. 내년에 다시 타당성 조사 예산을 확보해 후보지를 원점 재검토한다는 계획이다.

입양기록 공동행동 관계자 10여명은 이날 임시 서고 건물 앞에서 입양기록의 완전한 이관을 촉구하며 "인권을 보장하라. 우리의 기록을 존중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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