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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뉴스][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665] 북한 농구에선 왜 ‘페이크’를 ‘기만’이라 말할까
온카뱅크관리자
조회:
25
2026-01-15 06:04:00
<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425/2026/01/15/20260115055849037825e8e9410871751248331_20260115060414224.png" alt="" /><em class="img_desc">2018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통일농구 여자 경기</em></span> 농구 용어에서 요즘 ‘페인트 액션(feint action)’보다 ‘페이크(fake)’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쓴다. 공식 용어는 분명 페인트 액션인데, 거의 무의식적으로 페이크를 사용한다. 이는 단순한 말버릇이 아니다. 농구가 한국에 뿌리내리는 과정에서 형성된 언어의 관성과 동작 중심 문화의 결과다.<br><br>우선 기원부터 다르다. 영어 ‘feint’는 라틴어로 ‘만지다’는 의미인 ‘fingere’에 어원을 두고 있다. 고대 프랑스어로 ‘거짓되다’는 뜻인 ‘feint’라는 말이 영어로 넘어왔다. 페인트가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한 동작을 하는 의미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600년대부터였다. 스포츠에서 이 말을 사용한 것은 영국에서 근대스포츠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산업혁명 이후인 1800년대부터 였다고 한다. 중세 프랑스의 검술·펜싱 용어에서 많이 쓰였다. 'fake' 어원은 ‘만들다’라는 의미인 라틴어 ‘facere’ 이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복싱·야구·미식축구 같은 스포츠에서 fake는 상대의 반응을 유도하기 위한 속임 동작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다. 농구의 ‘shot fake’, ‘pass fake’도 이 흐름 위에 있다. 이때 중요한 점은 fake가 ‘부정행위(cheat)’와는 구분된다는 것이다. (본 코너 1617회 ‘북한에선 왜 ‘페인트’를 ‘제끼기’라고 말할까‘ 참조)<br><br>현장에서 페이크가 살아남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선수와 지도자에게 중요한 것은 개념이 아니라 몸의 순간적 반응이다. “페이크 한 번 더 줘라”는 말은 즉각적인 동작 지시지만, “페인트 액션을 활용해라”는 설명에 가깝다. 코트 위에서 살아남는 언어는 짧고, 빠르고, 몸과 직결된다. 페이크가 페인트를 밀어낸 이유다.<br><br>한국 농구는 일본을 거쳐 미국식 농구 용어를 받아들였는데, 이 과정에서 fake는 거의 번역되지 않은 채 그대로 정착했다. 반면 paint는 ‘페인트 존’, ‘페인트 액션’ 등으로 부분적으로만 흡수됐다. 페인트는 영역이나 전술을 설명할 때는 남았지만, 개별 동작을 지칭하는 말로는 힘을 얻지 못했다.<br><br>우리나라 언론은 1960년대부터 페이크라는 말을 본격적으로 사용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68년 11월10일자 ‘작년(昨年)부터 뚜렷한 두각(頭角)’ 기사는 ‘명지대(明知大)는 작년 1년동안에 뚜렷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팀. 지난 춘계(春季)리그에 경희대(慶熙大)와 84대84로비겨 상위(上位)그룹 진출의 자질을 보여주었다. 선수들의 평균연령이 21세미만으로 어려서 스태미너를 자랑, 처음부터 투지만만한 프레싱전법(戦法)으로 밀고나갈작전이다. 이 적극전법을 틈타서 노련한 F윤병성(尹炳成) 강태하(姜太夏) 콤비가 교묘한 페이크 모션과 패스 워크 로날카롭게 적진을 파고들어 슛찬스를 만든다. 평균신장Im79㎝(㎝),평균연령20세’라고 전했다. <br><br>북한 농구에선 페이크나 페인트를 그대로 쓰지 않고 ‘기만’이라는 직설어를 택했다. 기만은 ‘속일 기(欺)’ ‘속일 만(瞞)’이 결합한 한자어로 거짓된 행동이나 말로 상대의 판단과 인식을 흐리게 하여 원하는 반응을 끌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한중일 등 한자 문화권에서 오래전부터<br> 쓰던 군사·전술 용어이다. 북한 농구에서 페이크나 페인트 액션을 기만이라 부르는 것은<br> “속임의 본질을 가장 정확히 드러내는 말”을 택한 셈이다. .<br><br>북한 스포츠 용어의 가장 큰 특징은 외래어를 배제하고, 행위의 본질을 곧바로 드러내는 직설적 언어 사용에 있다. 상대를 속여 반응을 유도하는 동작이라면, 그것은 미화된 ‘페인트’가 아니라 곧장 ‘기만’이다. 기술을 감싸는 포장 대신 의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명명법이다.<br><br>여기에는 이념적 언어 감각도 겹쳐 있다. 기만이라는 단어는 북한의 정치·선전 담론에서 자주 등장한다. 적을 속이고 주도권을 장악하는 전술, 제국주의의 기만, 위장의 기만전술 같은 표현에 익숙한 사회에서 농구 역시 일종의 투쟁 공간으로 인식된다. 코트 위의 페인트 액션은 곧 수비를 속이는 전술적 기만이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br><br>흥미로운 점은 이것이 반드시 부정적 평가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북한 농구에서 기만은 금기나 반칙이 아니라, 인정된 기술 범주에 속한다. 다만 그 기술을 ‘영리하다’거나 ‘센스 있다’고 미화하지 않을 뿐이다. 무엇을 했는지를 명확히 말하고, 평가의 여지를 언어에 남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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