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OCI그룹의 이우현 회장, 한미약품그룹 창업주인 고 임성기 회장의 장녀인 임주현 부회장과 장남인 임종윤 전 사장, 임종훈 전 한미약품 사장/조선DB
경영권 다툼 끝에 새롭게 꾸려진 한미사이언스가 4일 오전 아사회를 열어 새 경영 체제 구축에 나선다. 시장에서는 2700억원대 상속세 해결 방안과 임원진 변동에 주목하고 있다. 증권 시장에서 제기되고 있는 주식 대량 대기 물량(오버행) 우려를 불식하고 경영권 분쟁으로 망가진 기업 이미지를 쇄신하는 일도 새 이사회가 해결해야 할 주요 과제다.
3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주총에서 선임된 새 한미사이언스 이사진은 4일 첫 이사회를 개최한다. 이는 지난달 28일 열린 한미사이언스 정기 주주총회에서 창업자 고(故) 임성기 회장의 장·차남인 임종윤·종훈 전 사장 형제가 사내이사로 선임된 후 처음 열리는 이사회다. 한미사이언스 새 이사회는 기존 멤버인 송영숙 회장과 신유철, 김용덕, 곽태선, 이사 등 4명과 지난 28일 주주총회 표 대결에서 선임된 임종윤 전 한미약품 사장(사내이사), 임종훈 전 한미정밀화학 대표(사내이사), 권규찬 디엑스앤브이엑스 대표이사(기타 비상무이사), 배보경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 사봉관 변호사(사외이사) 등 5명으로 총 9인으로 구성됐다.
앞서 임종윤·종훈 형제는 한미그룹 일가 모녀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과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부회장이 추진한 한미그룹과 OCI그룹 간 통합에 반대 입장을 밝히고 지난달 28일 주주총회에서 이사회 진입과 함께 그룹 통합을 저지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이사회에서는 한미그룹과 OCI그룹 통합 결의를 공식적으로 취소하고 새로운 그룹 안정화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송 회장이 맡고 있는 대표이사직을 임종윤·종훈 형제가 맡을 것으로 전망된다. 조직과 일상 경영, 인사 재무, 사업 행위를 책임지는 대표이사는 이사회 의결로 선임·교체한다.
한미그룹 임원진 전반의 변동 가능성도 있다. 앞서 주요 계열사 대표와 본부장 9명은 OCI 통합에 찬성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 중 OCI그룹 계열사 부광약품의 우기석 신임 대표가 대표이사 선임 일주일만에 사임 의사를 밝혔다. 업계에 따르면 전날 우 대표는 부광약품과 OCI그룹에 대표이사직 사임 의사를 전달했다. 우 대표는 기존 한미약품그룹의 온라인팜 대표이사 복직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 대표는 1994년 한미약품 영업사원으로 입사한 뒤 각종 영업부를 거쳤다.
(왼쪽부터)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전 사장과 임종훈 한미약품 전 사장이 28일 경기도 화성시 라비돌호텔에서 개최된 한미사이언스 정기 주주총회가 끝나고 악수를 하고 있다. /허지윤 기자
지난 2012년 한미그룹 유통전문 계열사인 온라인팜으로 옮긴 뒤 2015년부터 9년 간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지난 3월 22일 한미그룹과 OCI그룹 통합 과정에서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적자에 빠른 부광약품 경영 정상화와 함께 양 그룹간 인적 교류 첫 신호탄으로 해석됐다. 특히 한미그룹과의 통합 결렬 이후에도 OCI그룹은 우 대표와 함께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는데, 우 대표는 사임 뜻을 밝힌 것이다. 시장에서는 임종윤‧종훈 이사를 비롯한 한미그룹 일가의 상속세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고(故)임성기 창업자가 2020년 8월 별세한 이후 한미그룹 일가는 5년간 6차례 걸쳐 상속세를 분할 납부하기로 했다. 현재까지 은행이나 증권사의 주식 담보대출을 통해 상속세를 3차까지 납부했다. 경영권 다툼을 벌인 모녀와 형제 등 한미그룹 대주주 일가가 내야 할 상속세 규모는 총 2700억원대로, 4차 납부 기한이 이달 말로 다가왔다. OCI홀딩스와 통합으로 상속세 재원을 마련할 계획이던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도 주총 표 대결에서 패배하면서 그룹 내 영향력이 줄어든 상황에서 상속세를 해결할 방안을 다시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증권가 일각에서는 OCI그룹과의 통합 무산에 따라 ‘오버행’ 불확실성이 다시 떠올랐다는 시각도 있다. 그동안 한미사이언스 주가 하락의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가족의 상속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주주가 주식을 내다 팔거나, 담보 잡힌 주식이 시장에 나올 수 있는, 이른바 ‘오버행’ 이슈가 꼽혀왔다. 오버행이 발생하면 해당 주가는 폭락하게 된다. 다만 ‘오버행’ 문제와 관련해서 형제 측은 “대주주 지분이 주식시장에 매물로 나올 일은 없다”고 일축했다. 임종윤·종훈 사장은 지난달 25일 입장문에서 “선대 회장이 한평생을 바쳐 이룩한 한미사이언스(옛 한미약품) 주식에 대해 한 번도 팔 생각을 해 본 적 없고, 앞으로도 어떠한 매도 계획도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시장의 오버행 우려를 불식하려면, 대주주 지분 처분 외 잔여 상속세 재원 마련 방안을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 앞서 한미그룹은 상속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분을 사모 펀드에 매각하는 방안도 추진했으나 최종 불발된 바 있다. 임종윤‧종훈 사내이사는 한미 정체성인 신약 개발을 비롯해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CDO)‧위탁연구(CRO)로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경영 비전을 제시했다. 형제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이사회 진입에 성공해 경영권을 잡으면 OCI와 통합 결정을 되돌리고, 1조원 투자 유치를 통한 바이오 의약품 수탁 개발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미래 구상을 공언했다.
장남 임종윤 사내이사는 “100개 이상의 바이오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는 CDO‧CRO 전문회사로 만들 것”이라면서 “한국의 론자가 되겠다”고 말했다. 론자는 바이오의약품 CDO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제약사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경영권 분쟁으로 기업 이미지가 이미 많이 망가져 안타깝다”며 “이직을 고민하는 한미그룹 임직원이 제법 있을 것으로 보고 경쟁사 등에서 영입하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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