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제주 4·3 관련 기획 뉴스 이어갑니다.
4·3 당시 제주에서는 3만 명이 넘는 도민들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희생자 80% 가량은 남성이었지만, 남편과 아빠, 아들을 잃고 삶을 이어간 여성들의 사연도 기구합니다.
4·3과 여성, 그 질곡의 삶은 부족한 조사 속에 이제 서서히 사라지고 있습니다.
권민지 기자입니다.
(리포트)
스무 명 남짓이 빼곡히 서있는 그림 한 장.
1948년 북촌초등학교에서 집단 학살이 벌어지기 직전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제주 4·3 당시 14살이었던 이영자 할머니.
학살터로 끌려가 희생된 할아버지의 시신을 묻었던 참혹한 기억은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이영자 / 제주시 조천읍
"총 맞았어. 잡아놓고 죽어버리니...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죽어버리고 아버지는 살아났어요. 마을 사람 다 죽었어. 재수 좋은 사람들이나 살아났지."
그 참혹함과 원통함 속에서도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물질을 하고, 장사를 하며 살아남은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했습니다.
이영자 / 제주시 조천읍
"사니까 살아있구나 하고 살았지. 다른 건 다 잊어도 4·3은 잊어버리지 못해."
"우리 아버지, 목마르고 춥고 배고프고..."
위령비를 연신 어루만지는 허순자 할머니의 삶도 마찬가지.
4·3당시 아버지를 잃고 사무치는 그리움과 고통 속에 70여 년의 세월을 견뎠습니다.
목포 형무소로 끌려가기 전 당시 4살이던 할머니의 손을 잡았던 아버지의 따스했던 손길을 기억합니다.
허순자 / 제주시 이도2동
"할머니 등에 업혔는데 내 손을 잡아서 울고 말문이 다 막힌 거야. 그런데 배 선장이 "이제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 딸 손을 놓으세요."(라고 말했어요.)"
살아남은 어린 소녀에게 삶은 너무나 가혹했습니다.
허순자 / 제주시 이도2동
"어린 사람이 이렇게 힘든 일을 하느냐고 (묻길래) 나는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고 내가 노력 안 하면 내가 살지를 못하게 됐다."
제주 4·3 희생자 결정자 1만4천여 명 가운데, 80% 가량은 남성.
참혹했던 4·3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여성들은 지옥 같은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4·3 이후에도 제주 여성들의 삶과 역사는 4·3의 연장선이었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4·3과 여성, 연좌제 그리고 그 이후 생활상에 대한 조사나 연구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김오순 / 제주여민회 4·3과여성위원회 위원장
"연구 관점들이 획일화돼 있어요. (연구 관점 전환을 통해) 역사 기록에서 균형을 잡고 제주 여성의 정체성 정립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각한 트라우마 속에서도 황폐화된 제주를 일궈낸 제주 여성들에게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제주 4·3.
하지만 부족한 실태 조사 속에 4·3을 겪은 1세대 여성들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습니다.
JIBS 권민지입니다.
영상취재 오일령
JIBS 제주방송 권민지(kmj@jibs.co.kr) 오일령(reyong510@naver.c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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