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외 수익 구조 확대..정서 기반 소비 모델까지
통제적 소비 문화로 인한 왜곡된 상호작용 우려
주요 기획사들은 2010년대 후반부터 음원 외 수익 모델 강화를 위해 다양한 앨범 형태와 굿즈 전략을 도입해 왔다. 특히 위버스(위), 디어유 버블 등 팬 플랫폼을 개발해 멤버십, 전용 콘텐츠, 팬 소통 기능을 통합해 수익 구조도 고도화했다. /위버스 로고, 디어유 홈페이지 캡처
K팝은 팬과 아티스트의 관계가 밀접한 음악 산업이다. 음악 외에도 팬사인회, 라이브 방송, 메시지 앱을 통해 '친밀함'을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꽤 중요한 일이 됐고 이는 K팝 글로벌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한다. 그러나 이 친밀함은 때로 진정성이라는 이름의 감정 노동이며 많은 아이돌들이 공황, 불안, 번아웃을 호소한다. '사생'도 정서적 밀착 관계의 부작용 중 하나다. '팬을 위한 헌신'이라는 미명 아래 정서적 피로를 감내하는 아이돌들의 현실과 산업적·문화적·심리적 딜레마를 짚어 봤다. <편집자 주>
[더팩트 | 정병근 기자] K팝 산업은 지난 10여 년간 급격한 구조적 변화를 겪었다. 노래 소비 중심에서 아티스트 소비 중심으로 바뀐 것이다. 과거엔 노래가 팔리고 그 무대를 보기 위한 것이 산업의 주요 지표로 기능했다. 그러나 디지털 음원 단가 하락과 스트리밍 기반 소비 확산은 음악 자체의 단위 수익성을 낮췄다. 이와 동시에 K팝은 글로벌 팬덤 확장과 맞물려 새로운 수익 구조를 병행 강화해 왔다. 그것이 현재 K팝 시스템의 작동 원리가 된 아티스트 중심의 '인격적 소비 모델'이다.
기획사들은 음반 패키징, 팬사인회 응모, 플랫폼 구독, 굿즈 및 포토카드 수집 등 비음원 기반의 부가 수익 모델을 확대했다. 이 과정에서 사람 자체가 상품의 중심이 됐고 소비의 대상은 음악이 아니라 아티스트 개인으로 이동했다.
주요 기획사들은 2010년대 후반부터 음원 외 수익 모델 강화를 위해 다양한 앨범 형태와 굿즈 전략을 도입해 왔다. 다수의 기획사에서 미니앨범에 랜덤 포토카드를 구성해 앨범당 구매 유인을 높였고, 키노 앨범(키트를 스마트폰이나 테블릿과 연동해서 노래를 듣고 사진을 볼 수 있는 스마트 앨범)과 플랫폼 앨범(CD 없이 QR이나 NFC 등의 방식으로 수록된 음원을 듣는 음반)을 통해 물리적 음반의 다양화를 시도했다. 디어유 버블, 위버스 등 팬 플랫폼을 개발해 멤버십, 전용 콘텐츠, 팬 소통 기능을 통합해 수익 구조도 고도화했다.
이러한 흐름은 음악을 듣는 것보다 사람을 소유하는 것에 가까운 소비 양식을 형성했다. 음악이 더는 최종 상품이 아니게 된 것이다. 대신 음악은 아티스트를 더 깊이 알고 접속하기 위한 진입 장치로 기능한다. 음원은 연결의 수단이고 정서적 접근은 목표가 됐다.
K팝 산업의 구조 변화는 팬의 소비 심리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티스트와 관계는 콘텐츠 수용을 넘어서 정서 교환 구조로 변화했다. 팬은 음악 그 자체가 아니라 아티스트의 감정, 반응, 일상에 접근하는 권리를 기대한다. 이 접근권은 소비를 통해 확보된다고 여겨져 감정 보상으로 귀결되고 있다.
팬 플랫폼 서비스(버블, 디어유, 위버스 등)는 이 기대를 정교하게 반영한다. 유료 구독을 통해 팬은 아티스트의 메시지를 수신하고 특정 금액 이상의 소비를 통해 아티스트와 직접 소통할 기회를 얻는다. 그 안에서 정서적 교류는 무형의 상품이 된다. 감정은 '지불-응답'의 계약 구조로 작동하고 교감은 점차 성과 기반 서비스로 정형화된다.
굿즈 구매, 팬사인회 참여, 스트리밍 참여 등은 팬덤 내부에서 정서적 우위 확보 수단으로 간주된다. '내가 얼마나 소비했는가'가 곧 '얼마나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가'로 전환된다. 이는 자연스러운 소비 활동을 넘어 아티스트로부터의 감정적 보상을 기대하게 만든다.
감정의 상품화는 정서적 소유 욕구를 강화한다. 팬 일부는 자신이 지출한 소비만큼 아티스트로부터의 감정적 응답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인식한다. 이로 인해 정서 교류가 공공재가 아닌 개별 보상처럼 기능하게 된다.
사생활 통제 요구는 이 구조의 연장선에 있다. 대표적인 것이 연애 금지 요구다. 팬 일부는 열애설이 터질 경우 '배신'이라는 감정적 해석을 내리고, 이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거나 집단적 이탈을 시도한다. '팬이 투자한 감정이 무시당했다'는 논리는 여기서 발생한다.
팬 플랫폼은 실시간 감정 교환을 강화한다. '답장이 빠르다', '라이브 빈도가 높다' 등 요소는 아티스트의 정서적 진정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사용된다. 반응 속도는 감정의 진정성으로 간주되고 답장의 유무가 관계의 척도로 환원된다.
팬은 감정을 실시간으로 요구하고 아티스트는 그 기대에 반응하지 않을 경우 태도 논란에 휘말린다. 감정은 공감이 아니라 성실성의 평가 기준이 된다.
아이돌그룹이 소속된 한 기획사 관계자 A씨는 "팬과 아티스트 간 교류가 깊어질수록 연애나 사생활에 대한 팬들의 개입 강도도 높아지는 게 사실"이라며 "사소한 일상 노출 하나에도 팬 반응이 엇갈릴 때가 많아 아티스트 본인도 행동 하나하나에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답장이 늦거나 라이브를 자주 못 켤 때 '팬을 무시한다'는 반응이 올라오는 걸 보면 겁도 나고 긴장이 많이 된다. 가수 당사자는 오죽하겠나"라며 "진심으로 하고 싶어서 시작한 소통인데 때때로 그게 평가 대상이 되는 느낌을 받을 때 심적으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K팝 산업은 음악을 파는 구조에서 사람을 중심으로 감정을 판매하는 구조로 이행했다. 이는 글로벌 팬덤 확장과 맞물려 수익을 다각화한 성과를 가져왔지만 동시에 감정이 정량화되고 통제되는 시스템을 고착화시켰다.
감정의 구조적 상품화는 아티스트에게는 관리 대상이자 업무가 되고 팬에게는 구매 가능 자산이 된다. 이러한 정서적 교류가 자율성과 진정성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아티스트-팬 관계의 왜곡뿐 아니라 콘텐츠 생산의 지속 가능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
정서적 친밀함은 K팝의 경쟁력이지만 그것을 정량화하고 통제하는 시스템만으로 작동시킬 경우 아티스트의 표현과 팬의 수용 모두에서 왜곡된 상호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기획사와 아티스트 모두 고통을 겪는 사생도 '정서적 보상' 심리의 왜곡된 형태 중 하나다. 이러한 구조가 가열될 경우 아티스트에게 감정 표현은 심리적 부담을 가중한다. '정신 건강 악화'로 공식 활동 중단을 선언한 아이돌이 급증한 현실은 이러한 정서적 시스템의 부작용을 이미 보여준다.
결국 문제는 감정 교환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감정이 산업 구조 안에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가다. 지금 K팝이 직면한 과제는 이 감정이 단지 소비 대상이 아니라 지속 가능하게 순환될 수 있는 구조를 갖추는 일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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