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한반도와 남중국해 등 주요국 전략자산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장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흥미진진하게 전달해드립니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이 격주 화요일 풍성한 무기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지난해 8월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중요군수기업소들에서 생산된 250대의 신형 전술탄도미사일 발사대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경제1선부대들에 인도되는 의식이 수도 평양에서 거행됐다"고 보도했다. 평양=노동신문 뉴스1
대선을 앞두고 보수 진영에서 ‘전술핵 재배치’ 이슈를 다시 꺼내 들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전술핵 재배치·핵공유 공약을 냈고, 정몽준 아산정책연구원 명예이사장이 공개적으로 전술핵 재배치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고도화되고 있으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자체 방어능력 강화는 물론, 미국과의 공조 강화가 필요하다며 주한미군 전술핵 재배치는 미국 내에서도 긍정적인 기류가 조성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전술핵 재배치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도, 기술적인 차원에서 그것이 가능한지에 대한 고민은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정치적으로 전술핵 재배치를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군사적·기술적으로는 그것이 불가능에 가깝고, 실효성도 없다는 현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술핵 재배치와 핵공유를 이야기하기 앞서 그것이 가능한지부터 볼 필요가 있다. 1991년까지 주한미군에는 정말 많은 유형의 핵무기들이 있었지만, 현재까지 그 명맥이 남아있는 것은 전투기 탑재용 핵폭탄인 B61 하나뿐이다. 이 때문에 B61은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하는 정치·언론·학계가 제시하고 있는 사실상 유일한 옵션이다. 마침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핵공유 역시 B61 핵폭탄이 단일 옵션이기 때문에 주한미군에 B61만 유치한다면 북핵에 대한 억제력 발휘가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이 NATO 핵공유를 위해 제공한 핵무기는 100~120발 가량의 B61이고, 이 핵무기들은 벨기에·독일·이탈리아·네덜란드·튀르키예에 분산 배치돼 있다. 이들 기지 모두 러시아 국경으로부터 800~1,500㎞ 이상 떨어져 있고, 다층 방공 보호를 받고 있다. 물리적인 거리 덕분에 러시아가 이들 기지를 기습 공격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데다가, 탄도미사일은 10~15분 이상, 순항미사일은 1~2시간 정도 대응할 시간이 있다. 기지가 러시아 미사일에 피격되더라도, 피격되기 전 핵무기를 탑재한 전투기들이 이륙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다. 현재 NATO 핵공유 임무를 수행하는 전투기들은 스텔스 전투기인 F-35로 교체되고 있어 유사시 러시아에 대한 보복 공격 성공 가능성도 높다. 생존성과 투발 효율성 면에서 볼 때, 러시아에 대한 충분한 억제력 발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2024년 9월25일 건군 76주년 국군의 날 미디어데이가 열린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F-35A 프리덤 나이트가 편대 비행을하고 있다. 성남=박시몬 기자
그러나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B61 핵무기 투발이 가능한 F-16 전투기의 유일한 거점이 된 오산기지는 휴전선에서 불과 100㎞ 떨어져 있고, 이곳은 북한의 탄도미사일·대구경로켓탄이 발사 후 4~5분이면 떨어지는 곳이다. 그것도 요격이 불가능할 정도의 대량으로 말이다. 북한의 기습·집중 공격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전투기가 B61을 달고 이륙하더라도, 비스텔스 전투기인 F-16이 북한의 밀집방공망을 뚫고 평양 상공까지 날아가 핵무기를 투발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미국의 F-35 생산·부대 편성 계획을 보면 2030년대 초·중반까지는 주한미군 F-35A 배치는 어려운 상황이다. 생존성이 크게 떨어지고 투발 성공도 보장할 수 없는 한국에 미국이 핵무기를 배치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한국이 미국에 막대한 방위비 분담금을 지불하고 애원해서 주한미군 B61 재배치를 이끌어냈다고 치자. 언제든 손쉽게 제압할 수 있는 이 핵무기가 과연 북한에게 억제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이 때문에 지난 윤석열 정부 때는 핵미사일을 실은 미군 잠수함을 한반도 근처에 상시 수준으로 배치하거나, 핵무기 운용 능력이 있는 폭격기를 한반도 인근에 배치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었다. 미 해군에서 핵미사일 운용 능력이 있는 잠수함은 오하이오급 전략원잠 14척이 전부다. 이 중 8척이 태평양에, 6척이 대서양에 배치돼 있는데, 대부분 노후화가 극심하고 정비 소요가 많아 각 방면에서 동시에 전략 순찰 임무에 투입되는 잠수함은 많아야 2척이다. 중국·러시아에 대한 보복타격 임무가 최우선인 미군 전략원잠이 오로지 북핵 억제를 위해 한반도 주변에 상시 배치되어야 한다는 요구는 미국 입장에서는 수용할 수 없는 이야기다. 핵무기 운용 능력이 있는 폭격기를 한반도 주변에 배치하는 방안 역시 비현실적이다. 핵무기 운용이 가능한 B-52H는 먼 거리에서도 레이더에 잡히기 때문에 한반도 인근에 접근하는 순간 북한이 이를 감지하고 대응할 수 있고, 스텔스 폭격기인 B-2A는 기술적 특성상 이 기종을 운용할 수 있는 해외 기지가 극히 제한된다. 정비 이슈로 인해 괌이든 오키나와든 이 폭격기의 장기 주둔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2023년 7월 부산 해군작전기지에 입항한 미군 오하이오급 전략핵 잠수함 '켄터키함'(SSBN-737). 미 해군 함대전력사령부 제공
미군의 현존 핵전력 중 한반도 배치가 가능한 자산이 없다고 해서 전술핵 재배치를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북한이 이미 다량의 핵무기를 보유했고, 우리나라가 독자적인 핵무장에 나서는 것이 정치적 이유로 사실상 불가능한 이상, 북핵을 억제할 수 있는 대안은 주한미군 전술핵 재배치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군의 현존 전력보다는 미래 전력을 살펴보고, 이 가운데 한반도 유치에 적합한 무기가 있는지 찾아보아야 한다.
미 해군 전략시스템총괄책임자 조니 울프 중장은 지난 7일 미 하원 군사위원회에 “SLCM-N 프로그램과 관련해 중요한 이정표를 내년까지 달성하고, 이 무기가 2034년까지 초기작전운용능력(IOC)을 확보할 수 있도록 추진하되, 사업 일정을 더 앞당기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SLCM-N 사업은 수상전투함·잠수함에서 발사할 수 있는 핵탄두 탑재 장거리 스텔스 순항미사일 개발·배치 사업이다. 미국의 무기체계 획득 프로세스 구조상 2034년에 IOC를 확보하겠다는 것은 2030년까지는 체계 개발이 마무리되고, 2032년부터는 양산 및 부대 배치가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를 더욱 앞당긴다는 것은 2020년대 후반, 즉 향후 5년 내에 이 미사일 개발을 끝내겠다는 말이다.
미 해군이 이 사업 일정을 앞당길 수 있다고 보고한 것은 기반 기술 대부분이 이미 개발됐거나, 개발 완료 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이 미사일은 기존의 Mk.41 수직발사체계 ‘타격용’ 모델을 활용하기 때문에 탑재되는 미사일은 직경 23인치 이내, 길이 250인치 이내여야 한다. 미국은 이미 이 규격을 준수하면서도 1,900㎞ 가까운 사거리를 구현한 JASSM-XR을 개발했고, 여기에 탑재 가능한 150kt 위력의 W80 Mod 4 신형 핵탄두 개발도 거의 마친 상태다. SLCM-N 조기 전력화에 대한 미 해군의 의지가 매우 강하기 때문에 기존 기술을 활용하고 행정부·의회의 적극적 예산 지원만 이루어진다면 이 무기는 향후 5년 안에 실전배치될 수도 있다. 한국이 주한미군 전술핵 재배치를 추진한다면 바로 이 SLCM-N 조기 전력화와 동북아 지역 우선 배치에 모든 협상 역량을 쏟아 부어야 하는 이유다.
2023년 8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참관 아래 북한 해군이 전략무기 발사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북한은 이날 투입된 함정이 스텔스 기능을 갖췄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Mk.41 수직발사체계를 사용하는 이 미사일은 한반도 근처에 언제나 떠 있는 미 해군 이지스 구축함이나 잠수함 그 어디서든 발사가 가능하다. 컨테이너로 위장해 수송기로 신속하게 전개할 수 있는 미 육군 MRC의 ‘다크이글’ 시스템 역시 컨테이너 안에 Mk.41을 내장하고 있기 때문에 SLCM-N을 장전한 상태에서 오산·군산 등에 수시로 순환배치하는 것도 가능하다. 수중·해상·지상 어디서든 기습 발사가 가능하고, 일단 발사되면 스텔스 미사일이기 때문에 북한이 이를 탐지·추적해 대응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언제 어디서 갑자기 핵미사일이 날아올지 모른다는 공포는 북한 지도부로 하여금 핵무기 사용 의지를 접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무기는 수십조 원이 더 들어가는 KAMD·탄도탄 전력 강화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경제적이다. 우리가 SLCM-N 한반도 주변 배치를 통해 북핵 억제 효과를 본다면, 미국은 중국에 대한 억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 ‘윈윈’이다.
이러한 무기의 조기 전력화와 한반도 주변 배치는 결국 차기 정부가 한미동맹을 얼마나 더 강화하느냐에 따라 성사 여부가 갈릴 것이다. 차기 정부의 노선에 따라 우리 국민들이 북핵 공포를 머리 위에 이고 살지, 북한 지도부를 공포에 질리게 만들어 비핵화 협상 테이블로 끌고 나올 수 있을지가 결정된다는 말이다. 이번 대선에서 우리 국민들이 주권자로서 더 현명하게, 더 적극적으로 한 표를 행사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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