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발전·특성화 발전 위한 중대 사안… 즉흥적 약속, 설득력·효율성에 부정적 영향 우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025년 5월14일 부산시 유세에서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등의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서 서울의 한국은행부터 산업은행 싹 다 부산으로 갖다주면 좋겠는데, 그게 되나? 저는 불가능한 약속을 하지 않는다. (…) 국가기관들은 협의를 해야 하기 때문에 여기저기 찢어놓으면 안 된다. 그러나 딱 한 개, 해수부(해양수산부)만은 부산에 옮기겠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대한민국의 가장 큰 해운사가 에이치엠엠(HMM, 옛 현대상선)이라고 한다. 그 HMM이 부산으로 옮겨오도록 하겠다. 물론 그게 민간 회사라 쉽지는 않겠지만, 정부 출자 지분이 있어 마음을 먹으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직원들이 동의했다고 한다.”
2025년 5월14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부산 서면 유세에서 한 공공기관 이전 공약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 후보는 이날 유세에서 부산 시민에게 세 가지를 밝혔다. 첫째는 한국산업은행 부산 이전 불가, 둘째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셋째 HMM 부산 이전이다. 앞서 이 후보는 4월18일 페이스북을 통해 해수부 부산 이전을 밝혔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지역 간 균형 발전이나 지역 특성화 발전과 관련한 중대한 사안들이다. 그래서 집권 뒤 종합적인 검토와 조정, 결정을 거쳐 내놨어야 하는 정책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는다.
가장 큰 논란을 일으킨 발표는 역시 해수부의 부산 이전이다. 해수부는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19개 행정부 기관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장차관은 매주 서울과 세종에서 열리는 국무회의와 경제관계장관회의, 사회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해야 한다. 또 장차관과 실·국·과장 등 간부들은 수시로 대통령실의 회의와 국회 상임위원회, 국회 대정부질의 등에 참석해야 한다. 이 밖에 국회의원들의 개별적인 설명 요구에도 응해야 한다. 중앙 행정부의 업무 가운데 상당 부분이 국회, 대통령실, 다른 부처와 관련돼 있다.
중앙 행정부의 업무는 청이나 산하 공공기관과 달리 현장 행정이 아니라, 정책과 예산의 계획, 협의, 조정, 결정 등이다. 대통령실과 국회, 다른 행정부 기관과 가까이 있는 것이 필수적이다. 현재 19개 중앙 행정부 기관 가운데 14개가 세종시에, 4개가 서울에, 1개가 경기 과천에 있다. 앞으로 헌법이 개정되고 국회와 대통령실이 세종시로 이전하면 현재 서울과 과천에 남아 있는 5개 기관도 모두 세종시로 옮겨갈 예정이다. 2013년 해수부가 재건될 때 부산이 아니라 세종으로 입지가 결정된 것도 이런 이유였다.
정부세종청사에 있는 해양수산부의 모습. 연합뉴스
한 전직 고위 관료는 “균형 발전 차원에서 공약했겠지만, 중앙 부처는 고유한 업무가 있다. 해수부만 따로 떼어서 부산으로 보내면 정책 조율, 예산 확보, 법안 협의 등에서 큰 비효율성이 생긴다. 아직은 공약이니 민주당이 집권하면 국정 과제를 정할 때 우려나 반대 의견을 잘 들어서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다른 전직 고위 관료도 “기존에도 공무원들이 세종~서울을 오가는 데 시간을 많이 보냈다. 그래서 국회와 대통령실을 세종시로 옮기자는 것 아니냐. 해수부가 부산으로 가면 고위 간부들은 기차에서 시간을 다 보내든지 아예 서울이나 세종에 상주하게 될 것이다. 해수부 업무가 제대로 돌아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해수부의 부산 이전이 이 후보의 10대 공약에 포함된 ‘수도권 공공기관 2차 지방 이전’ 정책에 혼란을 일으킬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민원 전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해수부를 부산으로 보내면 농림축산식품부는 호남으로 보내고 문화체육관광부는 강원도로 보낼 것인가. 중앙 행정부는 세종시에 있는 것이 맞고 세종시도 수도로서 발전시켜야 한다. 괜히 분란을 일으키고 2차 공공기관 이전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중앙 행정부의 일부 기관을 이전할 수 있고, 이전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해수부가 해양 수도인 부산으로 가면 관련 업무나 산업이 집적돼서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모든 정부 부처를 한곳에 모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처럼 국토가 넓지 않고 온라인이 발전한 나라에선 필요에 따라 각 지역으로 옮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왜 해수부 이전을 공약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쇠퇴하는 부산의 사정 때문이다. 부산 인구는 1995년 388만 명에서 2025년 4월 325만 명으로 60만 명 이상 줄었다. 2024년 정부의 인구 추계를 보면, 2040년 285만 명, 2052년 245만 명으로 계속 축소된다. 2022년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도 3161만원으로 17개 광역 시·도 가운데 14위였다. 2000년 이후 부산의 지역내총생산은 16~17개 광역 가운데 14~16위로 최하위권이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부산·울산·경남 메가시티는 2022년 윤석열 정부 집권 뒤 무산됐다. 2030엑스포 유치도 2023년 실패했다. 2025년 5월엔 가덕도신공항 부지 조성을 위한 현대건설과의 계약도 공사 기간에 대한 이견 때문에 중단됐다. 특히 2022년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의 공약이었던 산업은행 이전은 민주당이 산은법 개정에 반대해 추진되지 못했다. 2020년 총선거에서 3석이었던 부산의 민주당 의석이 2024년 총선거에서 1석으로 줄어든 것은 산은 이전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도 나왔다.
윤석열 정부의 우동기 전 지방시대위원장은 “산은 부산 이전은 윤 정부의 국정 과제로 우리 위원회에서 추진했으나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이 반대해 실행할 수 없었다. 민주당이 윤 정부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지 않은 것이다. 윤 정부는 서울뿐 아니라 부산도 금융 도시로 발전시키려고 했다”고 말했다.
2023년 3월28일 산업은행 노조가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금융위원회 앞에서 산은 부산 이전 무효화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이 후보가 산업은행을 부산으로 이전할 수 없다고 말한 것도 파문을 일으켰다. 윤석열 정부 시절 민주당은 2차 공공기관 이전의 큰 그림이 없는 상태에서 산은만 부산으로 이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또 윤 정부가 산은 노조와 충분히 협의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와 함께 노무현 정부 때 균형 발전을 위해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서울은 국제 금융과 비즈니스 중심으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 있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산은 노조의 김현준 위원장은 “산은 부산 이전은 의대 정원 확대처럼 갑자기 졸속으로 발표했고, 노조뿐 아니라 거래처나 전문가들도 다수가 반대했다. 산은을 옮긴다고 해서 부산이 갑자기 금융 도시가 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의 산은과 기업은행, 농협, 축협을 여러 지역으로 분산하면 한국의 금융 허브는 사라질 것이다. 앞으로 새 정부도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2022년 윤석열 후보가 산은만 꼭 집어서 부산으로 이전하겠다고 말한 것처럼 2025년 이재명 후보가 산은만 꼭 집어서 부산으로 이전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도 신중하지 못한 발언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민원 전 균형발전위원장은 “산은 이전은 다른 국책은행이나 농협, 축협 등 이전과 연계돼 있다. 이전 여부를 쉽게 발표해서는 안 됐다. 먼저 2차 공공기관 이전을 어떻게 할지 큰 그림을 그린 뒤 개별 기관의 이전 여부를 발표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직 관료도 “부산으로 산은을 옮기는 일은 고민스러운 점이 있다. 부산을 세계적 금융 도시로 키울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산은을 부산으로 이전하지 않겠다고 할 것이 아니라, 산은을 2차 공공기관 이전 정책에 포함해 검토하겠다고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 후보의 공약은 5극(대광역권) 3특(특별자치도)인데, 서울은 국제 금융 허브로 키우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그런 구상으로 보면, 산은은 부산으로 옮기지 않고 서울에 두는 것이 맞는다. 금융 허브는 산은 하나 옮겨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전국적으로 산업 분포를 어떻게 할지 큰 그림을 그려서 옮길 것과 남길 것을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후보가 10대 공약에 포함한 2차 공공기관 이전의 대상 기관 수는 122개(2019년 이해찬 민주당 대표 의견)에서 350개(2020년 국토교통부 의견), 또는 500개(2019년 이민원 전 균형발전위원장 의견)에 이른다. 2024년 12월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알리오)을 보면, 전국의 공공기관은 339개였고, 그중 157곳이 수도권, 122곳이 서울에 있었다. 서울에 있는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알짜인 기관 중 하나가 바로 산업은행이다. 2024년 산업은행의 임직원 수는 3737명, 대출금은 203조원, 총자산 368조원, 당기순이익은 2조원이었다. 산은의 운명은 비슷한 성격의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세계적 해운 기업인 HMM의 본사 소재지를 정부가 결정하는 것이 맞느냐는 논란도 일었다. 현재 이 회사의 대주주는 산은과 한국해양진흥공사로 모두 71.69%의 지분을 갖고 있다. 이 후보는 부산 유세에서 노조가 부산 이전에 동의했다고 말했지만, 실제로 해상·육상 노조 가운데 동의한 곳은 없었다. 다만 해상 노조가 부산에 지역구가 있는 전재수 의원 등과 대화해왔다. 전 의원 등과 대화해온 해상 노조원의 다수(600여 명)는 배를 타는 직원들이고, 일부(300명)만 부산에서 근무하고 있다. 서울 본사에 있는 육상 노조원들(900명)은 사전에 민주당 쪽과 접촉한 일이 없었다. 정성철 HMM 육상 노조 위원장은 “민주당 부산 지역당 쪽에서 과장해서 발표한 것이다. 정부가 일시적으로 대주주라고 해서 민간 기업의 본사를 강제로 옮기는 일은 맞지 않는다. 국내 주요 선사와 외국 선사의 지점 대부분이 서울에 있다. 화주도 마찬가지다. 이전 비용은 크고 실익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상 노조의 전정근 위원장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에이치엠엠(옛 현대상선) 소유의 컨테이너 선박이 운항하는 모습. 에이치엠엠 제공
이에 대해 전재수 의원은 “정부 지분이 70%가 넘는다고 본사 이전을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않겠다. 앞으로 노사정이 함께 합의안을 만들어나가겠다. 다만 세계적 선사 대부분이 항만 도시에 있고 부산신항엔 HMM 터미널이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HMM의 정부 지분을 반드시 민간 자본에 매각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공기업으로 유지할 수도 있고, 부산시와 시민들이 일부 지분을 매입할 수도 있다. HMM의 공공성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토교통부 장관과 균형발전위원을 지낸 변창흠 세종대 교수는 “현재 정부가 HMM의 대주주이니 본사 이전을 할 수 있고, 나중에 매각하더라도 부산 본사 유지를 요구할 수 있다. 다만 임직원들의 어려움이 클 테니 인센티브나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정부 주도로 민간 기업 본사를 옮기기는 어렵지만, 해볼 만한 일이다. 현실만 생각하면 모두 서울에 두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경영 효율성만 보면 본사가 서울에 있는 것이 낫다. 고객사가 대부분 서울에 있고 국외 고객도 서울로 오기 때문이다. 다만 상징성이나 정책 차원에서는 부산으로 옮길 수 있다. 그러나 재무나 관리 쪽은 부산으로 가더라도 영업은 서울에 남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중앙 행정부와 공공기관, 민간 기업의 지방 이전 문제를 새 정부가 신중히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이민원 전 균형발전위원장은 “대선 기간에는 수도 이전이나 공공기관 이전을 공약할 수 있지만, 실제 내용은 새 정부가 들어선 뒤 다시 논의해야 한다. 2차 공공기관 이전은 반대와 요구 사항, 어려움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변창흠 전 장관은 “해수부나 HMM 부산 이전은 이슈 파이팅 차원에서 이해한다. 그러나 2차 공공기관 이전은 고민해야 할 일이 많다. 예를 들어 1차 이전 때 혁신도시 건설 방식은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다. 2차 이전 때는 주요 대도시에 공공기관을 집중하는 방식이 더 나을 것이다. 또 2차 이전을 주도할 국가균형발전위원회도 다시 꾸려야 한다. 노무현 정부 이후 균형 발전 정책에서 성과가 없었는데, 새 정부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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