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규제 강화에 중국 전용 인공지능(AI) 칩셋 ‘H20’ 수출길이 막힌 엔비디아가 새 중국용 칩 개발에 나섰다. 최신 칩셋인 ‘블랙웰’ 기반으로 하되 새 성능 규제에 맞춰 소형화하는 한편 고대역폭메모리(HBM) 대신 그래픽메모리(GDDR)를 사용하는 방향이다. 규제 불확실성 속 중국 매출을 포기할 수 없는 엔비디아의 고육지책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21일(현지시간) 아시아 최대 정보기술(IT) 전시회 ‘컴퓨텍스 2025’가 열리는 대만 타이베이에서 기자 간담회에 참여해 자사 최신 AI 칩셋을 소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4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은 “엔비디아가 기존 H20 대비 훨씬 낮은 가격의 중국 전용 AI 칩셋을 이르면 6월 양산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H20은 개당 1만~1만2000달러 상당이었으나 새 미국 정부 규제에 맞게 더욱 사양을 낮춰 6500~8000달러에 내놓는다는 구상이다.
로이터는 새 칩셋 설계가 블랙웰 계열인 워크스테이션용 GPU RTX 프로 6000D를 기반으로 한다고 전했다. 이는 “호퍼(H 시리즈 코드명)는 더 이상 개조할 수 없어 H20 후속작에 쓸 수 없다”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최근 발언과도 일치한다. 6000D는 게이밍 GPU에 96GB(기가바이트) 대용량 GDDR7 메모리를 넣어 AI·그래픽 작업이 용이토록 한 제품이다. HBM을 사용하지 않는 만큼 TSMC의 선단 패키징 기술(CoWoS)도 적용되지 않는다. 로이터는 “새 제품 이름은 확정되지 않았으나 B40 등이 고려 중”이라고 했다.
미·중 사이에 ‘끼인 신세’가 된 엔비디아는 고심이 깊다. 엔비디아는 지난 회계연도 매출 13%를 중국에서 거두고 있다. 미 정부가 의심 중인 중국의 ‘밀수’가 사실이라면 실제 매출 비중은 더욱 높을 전망이다.
그러나 바이든 정권 시절부터 거듭 강화된 대 중국 반도체 수출 제한에 엔비디아의 중국 내 시장 점유율은 급락 중이다. 화웨이 등 중국 기업이 엔비디아의 빈자리를 치고 들어온 탓이다. 황 CEO는 대만 컴퓨텍스 2025에서 “엔비디아의 중국 점유율이 2022년 95%에서 현재 50%로 줄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중국 전용 칩셋을 만들어도 규제 문턱이 갈수록 높아져 재고만 남게 되는 점도 리스크다. 엔비디아는 이미 H20 55억 달러 상상을 손실처리했다. 황 CEO는 최근 한 팟캐스트에서 “150억 달러 상당 매출이 사라졌다”고 밝힌 바 있다. 테크계 한 관계자는 “세번째 중국 전용 칩셋이 될 블랙웰 기반 신형도 같은 위협에 노출돼 있어 무턱대고 주문을 받거나 생산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더 이상 AI 가속기라 부르기 힘들 정도로 사양이 낮아져 화웨이 어센드 910 시리즈와 경쟁이 힘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윤민혁 특파원 behereno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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