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정책 아젠다된 '토종 OTT' 육성…티빙·웨이브 합병도 1년 이상 답보상태
'오징어게임', '무빙' 등 K콘텐츠의 글로벌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지만 국내 토종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는 별다른 수혜를 못 보고 있다. 콘텐츠 제작 및 유통 과정 전반에서 글로벌 OTT 플랫폼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하는 까닭이다. 이에 정치권과 산업계, 학계가 한목소리로 국내 플랫폼 생태계의 구조적 개선 필요성을 제기한다. 대선을 앞두고 주요 대선 후보들도 콘텐츠 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 공약을 제시하며, 토종 OTT 육성론이 정치·산업 전반의 전략 과제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지난 7일 'K콘텐츠 산업 진흥 간담회'에서 국내 OTT 플랫폼 경쟁력 강화를 강조했다. 이 후보는 "지금은 외국 OTT가 장악하고 있어 국내 콘텐츠가 종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우려를 표하고, 함께 자리한 김은숙 작가가 제안한 '국내 통합 OTT' 필요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는 글로벌 OTT 플랫폼 종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전략적 OTT 정책 필요성을 정치권이 직접 인정한 사례로 주목된다.
산업계와 학계도 토종 OTT의 전략적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19일 '콘텐츠 플랫폼 산업정책' 세미나에서는 콘텐츠 플랫폼이 단순 유통 경로가 아니라 자본, 창작자, 기술, 팬덤을 연결하는 종합 산업 구조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이 강조됐다. 전성민 가천대 교수는 "콘텐츠 플랫폼은 국가 전략자산으로 법적 지위를 부여받아야 하며, 이를 위한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글로벌 플랫폼의 시장 지배적 행위는 국내 플랫폼 생태계를 직접 위협하고 있다"며 규제의 형평성과 플랫폼 보호 정책의 시급성을 역설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국내 콘텐츠 플랫폼이 글로벌 플랫폼의 하청기지로 전락하지 않도록 정책적 전환이 필요하다"며 "토종 플랫폼이 자율성과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국회 차원에서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입장은 단순한 산업 보호 차원을 넘어 한류 콘텐츠의 주도권 회복이라는 전략적 목표와도 연결된다.
제작업계에서는 이미 글로벌 OTT 중심의 유통 구조에 따른 편성 불확실성, 유통 지연, 자금 회수 리스크가 심화되고 있다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K드라마 산업 정책 간담회'에서는 한국 드라마 제작 환경의 양극화 문제와 글로벌 OTT 자본의 영향력 확대가 핵심 이슈로 다뤄졌다. 이우종 K문화강국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은 "드라마 산업이 글로벌 플랫폼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국내 제작사들은 콘텐츠 주도권을 잃고 수익 구조도 장기적으로 왜곡될 수 있다"며 "정부가 실질적인 제도개선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치권, 산업계, 학계 모두가 국내 플랫폼 육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변화는 아직 미흡하다. 그동안 제기된 토종 OTT 육성 정책들은 대부분 선언적 수준에 그쳤고, 실행 가능한 통합 플랫폼 구축 로드맵이나 세부 재정 지원 방안은 부재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플랫폼이 생존하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정부 주도의 법·제도 정비와 함께 중장기적인 전략 수립과 민관 협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토종 OTT의 경쟁력 확보는 단순한 산업 육성 차원을 넘어 콘텐츠 주권 회복이라는 전략적 목표와 직결된다. 업계는 K콘텐츠가 더는 글로벌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고 자생력을 갖추기 위해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 등 실질적 조치를 통해 규모의 경제 확보 및 브랜드 집중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단순 이용자 수 확대를 넘어 콘텐츠 투자 여력 확보, 제작·유통의 효율성 증대, 글로벌 협상력 강화 등 통합 플랫폼이 가져올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미디어산업 평론가인 조영신 박사는 지난달 한국방송학회 세미나에서 "넷플릭스 중심 생태계에 종속되지 않기 위해 강력한 로컬 OTT를 키우는 것이 먼저"라며 "넷플릭스가 선택하지 않는 국내 콘텐츠를 흡수할 수 있는 로컬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했다.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장은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을 통한 강력한 로컬 OTT를 형성해야 한다"며 "건강한 미디어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도록 전향적 규제 완화 등 정책적 노력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승한 기자 winon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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