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대책위 1차 사고조사 발표에서 드러난 세 가지 문제점… 사망까지 간 공정에 ‘작은 위험-현 안전대책 유지’
2025년 6월8일 선반 작업 중 회전체에 끼여 숨진 김충현(50)씨를 추모하는 자리에서 석탄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송상표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더 이상 죽지 않게 대통령이 해결하라’ 손팻말을 높이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태안화력김충현대책위 제공
“이렇게 형식적인 TBM(Tool Box Meeting·작업 전 안전점검회의) 문서는 본 적이 없을 정도예요.같이 논의한 동료도 없고 위험 요소도 한 달 내내 똑같잖아요. 서류에 서명한 관리감독자도 실제로 현장에 와서 안전관리 하는 일은 없었다는 게 동료들의 공통된 증언이었습니다.”(최진일 태안화력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 상황실장)
2025년 6월2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에서 사람이 또 죽었다. 김용균씨 사고 이후 6년여 만에 다시 일어난 사망사고다. 기업은 왜 번번이 사고가 날 때까지 위험을 방치할까. 현장의 위험은 왜 늘 과소평가될까. ‘태안화력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대책위)가 확보한 자료를 한겨레21이 살펴보니, 평상시 위험 요소를 발굴·관리하는 체계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위험에 관한 수평적 소통은 사라지고 노동 통제의 흔적만 있었다. 그리고 그 뿌리엔 다단계 하도급이 자리 잡고 있었다.
4점. 사고가 난 선반 작업에 대해 한국서부발전 설비소 정비 업무를 하청받은 한전케이피에스(KPS)가 평상시 매긴 위험 점수다. 위험성평가서를 보면‘회전 부위에 접속하거나 말림에 의한 재해’의 위험 점수를 총 20점 만점에 4점으로 매우 낮게 매겼다. 한전KPS는 이를 ‘수용 가능한 위험’으로 이름 붙였다. 대대적 설비 개편 없이 ‘안전정보 및 안전보건교육 제공’으로 갈음하면 되는 수준이다. 그나마도 2023년엔 3점으로 더 낮았다. 5단계 위험 척도 중 가장 낮은 단계(‘작은 위험’)로, ‘현재의 안전대책(을) 유지’하면 되는 수준이다.
사망사고까지 유발한 위험을 왜 이렇게 과소평가했을까. 한전KPS는 “최근 5년간 선반 작업으로 인한 재해가 0건이었다. (4점은) 발생 빈도와 강도를 곱해서 나온 값”이라고 해명했다. 기업이 현장 위험을 평가할 땐 위험 발생 빈도와 강도를 곱해 그 점수가 높은 순서대로 강하게 대처하는데, 선반기계의 회전체 말림은 사고 발생 빈도가 낮아서 위험 발생 빈도를 1점으로 매겼다는 뜻이다.
대책위가 확보한 2023년 1월 선반작업의 위험성 평가표. ‘회전 부위에 접속하거나 말림에 의한 재해’가 3점으로 평가돼 있다. 한전KPS는 2024년 이를 4점으로 1점 상향했다고 밝혔다. 대책위 자료 갈무리
그러나 위험 발생 빈도를 평가할 때 사고 횟수는 가장 최소한의 기준이다. 노동자의 근무 중 위험 작업을 얼마나 자주 하고 위험 요소에 얼마나 오래 노출되는지, 며칠마다 아차사고(사고로 이어질 뻔한 상황)가 발생하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용노동부 위험성평가 실시 규정) 노동자가 선반기계를 하루에도 여러 번 돌린다면 사고 횟수와 무관하게 회전체 노출 빈도가 높다고 봐야 한다. 한전KPS의 접근대로면 사고가 나기 전까진 위험이 계속 과소평가되고 만다.
“사고가 정식 보고를 거치지 않고 은폐되는 경우도 많아서 재해 횟수로만 보면 위험이 계속 저평가될 수밖에 없어요. 그 작업도 분명 문제 제기가 있었을 텐데, 위험성을 평가할 때 현장 노동자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컨설팅에 의존하면 괴리가 생기거든요. 그래서 노조가 늘 얘기하는 게 ‘위험성 평가를 사업장 현실 그대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에요.” 이태진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노동안전국장의 말이다.
2025년 6월8일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선반 작업 중 회전체에 끼여 숨진 김충현(50)씨 영정을 들고 충남 태안 거리를 걷고 있다. 태안화력김충현대책위 제공
“기계 위험을 파악할 땐 사고 빈도가 낮더라도 회전체 등 신체가 낄 수 있는 모든 곳을 확인하고 위험을 제거해야 해요. 기계가 공장 안에 들어온 뒤에는 더더욱 위험 요소 제거가 쉽지 않고요. 그나마 표준 작업과 2인 1조 근무로 보완해야 하는데 이것도 정착이 잘 안 되거든요. 위험 요소가 잘 관리되는지 안전관리자가 꾸준히 지켜봐야 해요.사고 난 뒤에야 협착 지점을 지적하고 벌금 매기는 것만으로는 근본적 해결이 불가능합니다.” 박미진 원진재단 노동환경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의 말이다.
그러나 김충현씨의 경우 위험을 찾고 관리하는 일을 홀로 떠안았다. 안전에 관해 소통하고 조언을 구할 전담 인원이 없었다. 대책위가 확보한 2025년 5~6월 TBM 자료를 보면, 충현씨는 사고 당일까지도 TBM을 혼자 했다. 참석자 성명은 충현씨를 제외하면 모두 빈칸이다.사실상 ‘미팅’이 아니었다. 충현씨가 찾은 위험 요소도 한 달 내내 같은 내용이었다.
TBM은 관리감독자 주도로 노동자들끼리 팀을 이뤄 작업 위험 요인을 다시 확인하고 점검하는 회의다. 작업 내용이 매일 바뀌기에 TBM도 매일 해야 한다. 서로 컨디션을 확인하고 안전수칙을 복창하며 경각심을 다진다. 현장에서 놓친 위험은 관리감독자가 찾아서 보완한다. 그러나 충현씨의 TBM 일지엔 그런 흔적이 없었다.
대책위가 2025년 6월5일 공개한 TBM 문서(왼쪽). ‘서명’란을 보면 김충현씨 이름만 쓰여 있다. 오른쪽은 다른 사업장의 평소 TBM 문서. 여러 노동자의 이름이 쓰여 있다. 대책위 자료 갈무리
심지어 TBM에 서명한 ‘관리감독자’는 하청업체 요구로16시간 온라인 안전 교육을 이수해 수료증을 딴 현장 노동자였다. 충현씨와 전혀 다른 일을 했기에 작업 이해가 있을 리 만무하다.“평상시엔 같이 일하다가 TBM 할 때만 사인하는 용도였다”고 노조는 말한다. 충현씨와 함께 ‘정비동’에 머무른 현장소장도 기계공작 쪽 지식이 전혀 없었다. 6월3일 사고 현장에서 활동가들이 현장소장에게 선반기계에 관한 사실 확인을 요청했으나 그는 질문(‘단동척은 어디 있냐’ ‘사고 설비는 평상시 어떻게 관리했냐’ 등)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충현씨의 업무 장소는 원청 안전관리자 시야에서도 멀었다. 한전KPS 안전관리자들이 이따금 현장점검(패트롤)을 돌더라도 생산설비에 한정됐고, 정비동까지 오는 일은 좀체 없었다.팀을 이뤄 발전소를 정비하는 다른 노동자들과 달리 충현씨는 정비동에서 홀로 부품을 만들었다. 충현씨가 속한 하청업체도 정원 25명의 영세한 업체여서 안전관리자를 따로 선임하지 않았다. 아무리 수천 명이 다니는 대기업에서 일해도 서류상 영세한 2차 하청업체 소속이면 체계적 안전관리를 못 받는 셈이다.
“왜 (위험성 평가) 점수가 낮냐고요? 3점 이상 되면 대책을 세워야 하니까요. 그 대책도 저희(노동자)더러 가져오라니까 서로 불편해지기만 하죠.그런 일이 반복되면 나중엔 점수를 그냥 낮게 책정해요. 처음엔 저희도 위험하다고 말 많이 했죠. 그런데 늘 돌아오는 답이 ‘알아서 조심해서 작업하라’니까.” 정철희 한전KPS 비정규직지회 태안분회장의 말이다.
위험이 과소평가된 건 선반 작업만이 아니었다. 밀링·드릴링 머신 작업도 위험 점수 20점 만점에 4점을 초과하는 항목이 없었다.주로 사고 위험보다는 근골격계 질환 등 질병 위험에 초점을 맞췄다. 전반적으로 위험이 과소평가된 경향이다. 정 분회장 은 그 이유가 “말해도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2025년 6월8일 공공운수노조와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표 등이 충남 태안에서 ‘위험의 외주화 중단, 정규직화 이행’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태안화력김충현대책위 제공
2018년 김용균씨 사망 이후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됐다. 원청은 자사가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의 노동자를 하청 여부와 무관하게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법은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했다. 하청에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위계적 업무 구조가 위험 소통을 차단했다. 2018년 김용균씨 사고 전 하청 노동자들이 28차례나 주요 설비 개선을 요구했는데도 원청 서부발전이 묵살한 것과 판박이다.
원·하청은 도리어 노동 통제로 일관했다. 현장 노동자가 TBM 도중 자리를 비우면 벌칙처럼 ‘반성문’을 쓰게 했다고 한다.대책위가 6월10일 공개한 한국KPS 하청업체 노동자의 반성문을 보면, “터빈 2층 현장 대기실에서 아침 TBM 미팅 참석 위해서 대기하는 중에 화장실 용무로 OS산업개발(한전KPS 하청) 직원에게 이야기한 후 잠시 자리를 비웠습니다. 제가 자리 비우는 사이에 TBM 업무 미팅이 종료됐습니다. 불참석에 대한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2025년 6월8일 충남 태안화력발전 앞에서 활동가들이 김충현씨의 죽음에 사죄하라고 요구하는 펼침막을 들고 있다. 멀리 김충현씨 영정이 차량 전광판에 띄워져 있다. 태안화력김충현대책위 제공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선 수평적 소통이 줄고 수직적 지시만 는다.이미 김용균씨 사망사고를 조사한 특별조사기구가 지적한 문제다. “유기적으로 연결된 발전소 연속 공정을 (인위적으로) 외주화”하면서 소통이 끊기고 노동자만 과도하게 통제하게 됐다는 것이다.(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조사결과 종합보고서) 이에 특별조사기구는 발전소 연료·환경 운전 업무는 발전회사 직접고용을, 발전소 유지·보수(경상정비) 업무는 한전KPS로 재공영화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당시 집권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경상정비 재공영화를 거절했다. 김용균씨가 소속된 연료·환경 운전원만 직접고용하기로 했다.그리고 6년이 지나 경상정비 노동자인 충현씨가 숨졌다. 그나마 직접고용을 약속한 연료·환경 운전원은 아직도 정규직이 되지 못했다. 표면적으론 한국전력과 하청회사 주주의 지분 거래를 실무적으로 마치지 못했다는 이유지만, 속내는 사실상 정부 의지가 없다고 노동계는 본다. 충현씨가 숨지기 닷새 전인 5월29일에도 민주당은 발전소 비정규직 노조와 추진하려던 정규직화 협약을 파기했다. 반쪽짜리 약속마저 지키지 않은 것이다.
2025년 6월8일 우원식 국회의장이 충남 태안의료원에 마련된 김충현씨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태안화력발전소 사고 현장 앞에서 묵념하고 있다. 태안화력김충현대책위 제공
한국서부발전의 유지보수 업체인 한전KPS는 서부발전에서 받은 일감을 다시 잘게 쪼개어 하청업체로 외주화한다. ‘입찰’을 한다는 이유로 짧으면 6개월, 길어도 1년마다 업체를 갈아치운다. 노동자는 출근지도 업무도 그대로인데 소속 업체만 수개월마다 개·폐업하는 고용불안에 처한다. 충현씨도 한전KPS의 하청 노동자로 9년을 일하는 동안 사장이 여덟 번 바뀌었다.하청 노동자 24명은 한전KPS를 상대로 불법파견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일감을 외주화할수록 노동자 안전은 시야에서 벗어난다. 6월9일 한국서부발전에선 두 번째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야외에 있던 발전소 저탄장을 건물 안으로 들이는 작업(‘저탄장 옥내화’) 도중 노동자가 심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 사고의 노동자도 한국서부발전 옥내화 작업을 맡은 현대삼호건설의 하청 노동자였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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