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문10답 - ‘소버린 AI’ 개발
국가가 자체개발하는 소버린 AI
현지 맞춤형 솔루션 개발 용이
외국 AI모델 사용땐 변수 많아
국가 안보·경제적 피해 가능성
정부, 우수기업 3~4곳 집중지원
고성능 인프라와 전문인재 양성
英, 국가컴퓨팅에 1.3조원 투자
中, 오픈AI 차단하고 자체 개발
그래픽=권호영 기자, 게티이미지뱅크
이재명 정부의 인공지능(AI) 3대 강국 목표에 ‘소버린 AI’가 핵심축으로 등장해 주목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소버린 AI를 주창해왔던 하정우 네이버클라우드 AI이노베이션 센터장을 지난 15일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으로 파격 임명했다. 이어 지난 20일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울산 AI 데이터 센터 출범식에서도 이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소버린 AI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챗GPT가 있는데 소버린 AI를 왜 개발하느냐, 낭비다’라는 이야기는 ‘베트남에 쌀 생산 많이 되는데 뭘 농사를 짓냐, 사 먹으면 되지’ 이런 이야기와 똑같은 것”이라며 “그게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 모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두의 AI’ ‘한국형 챗GPT’ 등을 대선 AI 공약으로 내세웠던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소버린 AI에 대해 알아본다.
1. 소버린 AI란 무엇인가
‘자주적인’ ‘주권이 있는’이라는 의미의 소버린(Sovereign)에 AI를 붙인 단어다. 소버린 AI는 외국의 기술이나 플랫폼에 의존하지 않고, 한 국가가 자체적으로 AI를 개발·운영·관리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즉 데이터·기술·인프라·인재·법·윤리 기준 등 모든 요소를 자국 주도로 갖추는 AI를 뜻한다. 최근 AI가 경제와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면서, 자국 내에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자체적으로 AI를 발전시키는 역량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소버린 AI는 단순한 기술 독립을 넘어, 국가의 디지털 주권과 미래 산업의 주도권을 지키는 전략적 자산으로 인식된다.
2. 소버린 AI와 글로벌 AI의 차이는
가장 큰 차이는 데이터와 운영의 주체에 있다. 소버린 AI는 자국의 데이터와 기준, 인프라를 바탕으로 개발·운영되며, 외부 간섭 없이 자율적으로 관리된다. 반면 글로벌 AI는 오픈AI, 구글 등 다국적 기업이 제공하며, 해당 기업의 정책과 규제에 종속될 수 있다. 글로벌 AI에 의존할 경우, 데이터 유출이나 서비스 중단, 가격 인상 등 외부 변수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소버린 AI는 이러한 리스크를 줄이고, 국가가 직접 AI의 방향성과 활용 범위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또한 소버린 AI는 자국의 문화와 언어, 사회적 맥락을 보다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어, 현지화된 서비스와 맞춤형 솔루션 개발이 용이하다. 반면 글로벌 AI는 범용성과 확장성에 강점을 갖지만, 각국의 특수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
3. 왜 소버린 AI가 주목받나
AI는 산업, 공공, 국방 등 국가 전반에 필수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 외국 기업의 AI에 의존할 경우 데이터 유출, 가격 인상, 서비스 중단 등 다양한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특히 국가 안보와 경제적 협상력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외국 기업이 AI 모델 이용료를 올리거나 서비스를 중단하면, 국내 기업은 가격 협상력을 잃고 국가적으로도 데이터 주권과 안보가 위협받게 된다. 소버린 AI는 이러한 위험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국가의 디지털 주권을 지키는 핵심 수단으로 평가받는다. 또 소버린 AI를 위한 기술 내재화 자체 역시 국가 미래 성장동력 확보와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의 주도권 확보에도 필요하다는 평가다.
4. 소버린 AI를 위해 필요한 요소는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고성능 컴퓨팅 인프라와 대규모 데이터 확보, 전문 인재 양성, 자국 기준의 윤리·법적 프레임워크 구축, 자체 개발 및 유지보수 역량이 필수적이다. 특히 데이터 주권 확보가 중요하다. 자국 내에서 수집·관리되는 고품질 데이터가 AI의 성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AI 윤리와 법적 기준을 자국 실정에 맞게 정립하고, AI 인재를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것도 시급하다. 정부와 민간의 협력, 장기적 투자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또한, 글로벌 기술 트렌드와의 연계, 보안 및 개인정보 보호 강화, AI 활용 확산을 위한 사회적 합의도 중요하다.
소버린 인공지능(AI)을 강조해 왔던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이 지난 1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AI 인재 등을 육성하는 내용의 이공계특별법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5. 하정우 수석이 주장해온 소버린 AI 핵심 전략은
선택과 집중을 통한 생태계 확장이다. 하 수석은 소버린 AI 구축을 위해 한정된 국가 자원을 AI 역량이 뛰어난 대표 기업 3~4곳에 집중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특히 GPU 등 고성능 컴퓨팅 자원을 대표 기업에 우선 배분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AI 모델을 빠르게 개발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방식을 통해 개발된 AI 모델을 오픈소스로 공개해 국내 전체 산업 생태계가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논리다.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AI 접근도가 낮은 스타트업과 중소기업도 고품질 AI 기술을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의미다.
6. 소버린 AI 성공 시 국내 기대 효과는
스타트업과 중소기업도 고품질 AI 기술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되면, 이를 통해 다양한 AI 기반 상품과 서비스가 빠르게 개발돼 산업 생태계가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 수석은 “아랍어, 인도네시아어 등 각국에 맞는 소버린 AI를 만들어 수출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각국 특화 거대언어모델(LLM) 개발은 한국의 새로운 수출 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AI 기술의 내재화는 국가 경쟁력 강화와 일자리 창출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또한, 공공·금융·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맞춤형 AI 서비스 제공이 가능해져, 사회적 효율성과 국민 삶의 질 향상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7. 국내 소버린 AI 모델은 어느 정도 개발됐나
2025년 현재 국내에서 소버린 AI로 분류되는 토종 LLM은 총 14개다. 6개 기업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LG그룹이 5개, 네이버와 삼성이 각 3개의 자체 AI 모델을 사내 업무 자동화와 고객 응대, 기업 간 거래(B2B) 솔루션 등에 적극적으로 활용 중이다. 이들 모델은 한국어 데이터와 국내 환경에 최적화돼 있어, 글로벌 AI 대비 높은 현지화 성능을 보이고 있다. 다만 아직 글로벌 빅테크와의 기술 격차를 좁히기 위한 추가 연구와 투자가 필요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은 세계에서 3번째로 많은 자체 AI 모델을 보유하고 있지만 미국(125개), 중국(95개)과 비교해 격차가 크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총 271개의 초거대 AI 모델이 출시됐으며, 이 중 81.2%가 미국과 중국에서 개발됐다. 또 한국이 자체 AI 모델 보유 수에서는 3위를 차지했지만, 모델 활용 빈도는 미미한 상황이다. 매년 AI 서비스 사용량을 조사해 발표하는 미국 벤처캐피털 앤드리슨 호로위츠의 ‘세계 AI 서비스 사용량 톱 50’(3월 기준)에 따르면 50위 안에 한국 모델은 없었다. 웹 기반 AI 서비스 사용량 톱 50에서는 SK텔레콤의 에이닷(A.)이 15위, 라이너가 19위에 이름을 올렸지만, 이 역시 자체 모델로 보기는 어렵다. SK텔레콤은 퍼플렉시티 등과, 라이너는 오픈AI·구글 등과 협력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8. 해외에서는 어떻게 추진되고 있나
각국은 협력과 경쟁을 병행하면서, 디지털 주권 확보와 글로벌 AI 시장 주도권을 동시에 노리고 있다. 중국은 자국 내 AI 발전을 위해 오픈AI, 구글 등의 서비스를 차단하고 바이두, 알리바바의 자체 AI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AI 주권’을 강조하며 자체 AI 규제와 인프라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최근 ‘비바테크 2025’ 행사에 참석해 “AI 인프라 구축은 디지털 주권을 위한 싸움”이라며, 자국 데이터센터 및 AI 기가팩토리 건설에 수천억 원대 투자를 예고했다. 영국 키어 스타머 총리 역시 AI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10억 파운드(약 1조8000억 원) 규모의 국가 컴퓨팅 인프라 확충 계획을 발표했다. 독일도 도이체 텔레콤과 엔비디아가 협력하는 AI 클라우드 플랫폼 구축에 나서며 ‘미국 기업에만 의존하지 않는 유럽형 AI 생태계’를 선언했다. 이외에도 캐나다와 사우디아라비아 등도 국가 차원의 AI 컴퓨팅 인프라 투자와 오픈소스 LLM 개발에 나서고 있다.
9. 소버린 AI의 단점과 한계점이 있다면
소버린 AI는 글로벌 협력과 오픈소스 생태계 위축이라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국가 안보와 주권의 관점에서 AI에 접근하면, 각국이 AI 개발을 비공개·폐쇄적으로 운영하게 돼 국제 협력과 혁신이 저해될 수 있다. 이는 AI 발전 속도를 늦추고, 사회 전체의 공공 이익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막대한 개발비와 인재 부족, 데이터 표준화의 어려움 등 현실적 한계도 존재한다. 완전한 기술 독립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소버린 AI가 국가 주도로 운영될 경우, 정부가 데이터와 AI 시스템을 통제해 감시, 검열, 사회적 통제에 악용할 위험도 있다. 특히 권위주의 국가에서는 AI가 특정 이념이나 가치관을 강화하고, 소수자나 반대 의견을 억압하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국가 데이터와 AI 시스템이 집중되면 해킹 등 사이버 공격의 표적이 되기 쉽고, 보안 사고 발생 시 국가적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도 있다.
10. 소버린 AI를 위한 국내 과제는
전문가들은 국가 AI컴퓨팅센터 등 인프라 확충을 비롯해 데이터 주권 및 보안 강화, AI 인재 양성, 산업·공공 부문에서의 AI 활용 확대를 주문하고 있다. 소버린 AI의 성패는 ‘데이터’에 달려 있는 만큼, 각 기업은 보안이 철저히 유지된 자체 데이터뿐 아니라, 조직 내에서 형성된 고유한 정보와 전문 지식, 기업문화까지도 체계적으로 디지털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고성능 컴퓨팅 인프라(GPU 등), 폐쇄형 프라이빗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등 맞춤형 AI 인프라 및 기술 역량 확보는 기본이다. 자체적으로 AI를 개발·운영할 역량이 부족하다면, 신뢰할 수 있는 국내 AI 플랫폼이나 클라우드 서비스를 활용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개인 역시 AI 활용을 위한 기본적인 정보기술(IT) 역량과 디지털 리터러시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이용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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