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서둘러 변압기 개발 과제를 추진하는 것은 '2030년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 개통'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서다. 해외 소수 기업이 관련 기술을 갖고 있지만 목표 시기까지 수입이 어려운 점, 국가 전력망 구축이라는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국산화'에 속도를 내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과제로 개발한 변압기가 향후 국내 전력기기 업체의 주요 수출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지난 5월 공개된 한국전력공사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관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에 따르면 호남-수도권 HVDC(초고압직류송전) 송전망 구축 사업은 원래 1단계 사업 완료 목표가 2031년이었다. 그러나 2030년까지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를 개통한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을 반영, 목표 시기를 1년 앞당겼다.
남은 4년여 기간에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 중 하나는 '기술 확보'다. 에너지 고속도로 사업에 필요한 설비는 크게 '케이블'과 '변환설비'(변압기·컨버터 등으로 구성)로 나뉜다. LS전선·대한전선 등이 이 사업에 필요한 육상·해저케이블 기술을 이미 갖췄고 생산 능력 확대에 공을 들이고 있다. 문제는 변환설비다. 국내에 LS일렉트릭·효성중공업·HD현대일렉트릭 등 경쟁력 있는 전력기기 업체가 있지만 종전까지 사실상 국내 수요가 없었던 'GW(기가와트)급 전압형 HVDC 변환설비' 기술까진 갖추지 못했다.
GE·지멘스·히타치 등 소수의 해외 기업이 관련 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되지만 수입에 두 가지 '걸림돌'이 있다. 변환설비는 공급 부족으로 판매자에게 유리한 셀러마켓(Seller's market)이 형성된 탓에 원하는 시기에 수입하기가 어렵다. 또한 에너지 고속도로가 국가 전력망을 구축하는 사업인 만큼 에너지 안보 확보 차원에서 외산이 아닌 국산 변환설비를 사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이런 사실을 종합적으로 고려, 우선 변압기 국산화 지원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추가경정예산이 없었다면 이번 과제는 내년 시작할 가능성이 높았다. 원래 정부가 처음 마련한 30조5000억원 규모 추경안에도 이번 사업 예산이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국회 심의를 거치며 추경 규모가 31조8000억원으로 증액 처리됐고, 이 과정에서 60억원 규모 '고전압 송전 기술' 개발 지원 사업이 추가됐다. 2030년 에너지 고속도로 개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하루라도 빨리 국산화 과제를 시작해야 한다는 국회·정부의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전력기기 업계는 이번 과제의 성공이 향후 각 기업 사업 실적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봤다. 총 12조원으로 추정되는 에너지 고속도로 사업비 중 대부분을 케이블과 변환설비가 차지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유럽 등에서 활발하게 추진 중인 전력망 구축 사업에도 다양한 변환설비가 필요한 만큼 이번 국산화하는 변압기가 향후 주요 수출품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은 이 과제 제안요청서에서 "한국을 글로벌 전압형 HVDC 핵심 기자재 생산거점으로 육성해 새로운 국가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국내 HVDC 기술·산업 생태계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유선일 기자 jjsy8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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