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일본과 미국의 관세협상에 성공하면서 일본의 상호관세는 15%로 낮아졌다./ 연합
미·일 관세 협상이 타결하면서 이재명 정부 통상 협상팀이 갖는 부담도 커졌다. 일본은 미국이 부과한 25%의 상호관세와 자동차 품목 관세를 모두 15%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한국이 이 같은 수준으로 자동차 관세를 인하받지 못할 경우, 일본차와의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 대미 수출이 급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3일 미국과 일본 정부에 따르면, 일본은 이번 협상에서 그동안 개방하지 않았던 자동차 시장과 쌀 등 일부 농산물 시장을 개방하기로 했다.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사업에도 대규모 투자를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의 대미 투자금 중 상당 규모가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투입될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각) “일본과 역사상 최대 규모의 거래를 성사시켰다”며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758조원)를 투자하고, 미국이 이 중 90%의 이익을 얻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당초 미국이 일본에 요구한 금액은 4000억달러(약 550조원) 수준으로 알려졌으나, 이를 넘어서는 규모다.
이번 미·일 협상에서 가장 주목 받는 부분은 자동차 관세 인하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미국이 일본산 자동차에 부과하던 25% 관세를 절반 수준인 12.5%로 낮추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미 수출 일본산 자동차 기본관세(2.5%)를 더하면 최종 관세율은 15%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간 “철강과 자동차 등 품목 관세는 낮출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던 걸 고려하면, 일본 정부로선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까지 미국으로부터 품목별 관세 인하를 끌어낸 국가는 영국과 일본뿐이다.
자동차는 한국의 대미 수출 1위 품목이자, 일본과 가장 경쟁이 치열한 분야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 수출액 1278억 달러 중 자동차(347억 달러)와 자동차 부품(71억 달러)이 차지하는 비중은 3분의 1에 달한다. 특히 현대·기아차와 도요타·혼다는 주력 모델 차급이나 가격대가 비슷해 직접적인 경쟁 관계에 있다.
한국 입장에선 자동차 관세율 인하라는 당면 과제가 부여된 셈이다. 외교부 경제통상대사를 지낸 최석영 광장 고문은 “기본관세 인하도 중요하지만, 자동차·철강 등 주요 품목에서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왼쪽부터 구윤철 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 /뉴스1
이에 따라 오는 25일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만나는 ‘한·미 2+2 통상협의’에서 국산차 관세율을 인하하는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산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미국이 우리 측 협상안을 수용하지 않고 과도한 투자를 계속 요구할 경우 협상은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 미국은 우리 정부에 4000억 달러 규모의 ‘제조업 협력 강화 펀드’ 조성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한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약 3개월치에 해당하는 규모로, 현실적으로 수용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 정부는 조선·반도체·배터리 등 전략 산업 분야 협력 강화를 내세운 ‘제조업 르네상스 파트너십’을 중심으로 협상에 나설 계획이다. 에너지 협력도 주요 카드다. 한국가스공사는 지난 4월 이사회에서 미국산 LNG 연간 도입 물량을 두 배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했고, 한국석유공사는 이달 9일 미국산 경질유 200만 배럴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협상 진전을 위한 정부 총력전도 벌어진다. 우선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2 통상 협의와 별도로 23~25일 방미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 더그 버검 국가에너지위원장 등을 만나 에너지 분야 협력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통상 관계자는 “이번 방미에서 한국과 미국은 에너지 전반에 걸쳐 협력 방안을 집중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일부 농산물 분야에 대한 비관세 장벽 완화가 불가피하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류예리 경상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일본도 쌀 시장은 정치적으로 민감하지만, 과감히 개방 결정을 내렸다”며 “우리 역시 국익을 고려한 유연한 판단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일 협상을 연구해 미국을 설득할 수 있는 최종 정부안을 마련하는 게 핵심이라고 제언했다. 류 교수는 “우리도 일본처럼 정량적인 투자 제안을 한다면 협상에서 진전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최석영 고문도 “일본과 미국이 구체적인 안보다는 큰 틀의 합의로 관세 인하를 끌어낸 만큼,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일본의 방식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주 일요일 밤 0시에 랭킹을 초기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