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립습니다 - 장손 아버지와 숙부들
1960년대 집안 일가와 형제들이 명절 때 함께 모여 찍은 사진. 모두가 가난했던 그 시절에도 정장을 차려입으려 애썼던 어른들이 한국의 오늘을 이루셨음을 나이 들어서 깨닫게 됐다.
60여 년 전 박제품 호랑이 위에 올라탄 내 어린 시절 모습. 이걸 찍은 떠돌이 사진사가 남파 간첩이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누구나 정든 일터를 떠날 때가 있습니다. 31년 3개월의 대학교수직을 떠나며 연구실 가득한 책들 속에서 낡은 앨범을 발견했습니다. 사진에는 아버지와 형제들이 아직 살아 있습니다. 앨범 속 흑백으로 남아있는 나의 어린 시절 모습이 태어난 지 22개월 된 나의 손자와 너무나 닮음을 보게 됐습니다. 사진 속에서 한 가족의 역사는 닮음으로 연결됩니다.
60여년 전 나의 아버지와 형제들 그리고 어린 자녀들의 풍경은 지금도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있습니다. 사진 하단에 쓰여 있는 ‘단기 4294년’(1961년)을 보면 참 오래전에 찍은 사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우리 가족은 명절이 되면 아버지와 온 형제가 모였는데 정장 차림으로 예를 갖춰 시골 마을에 모두 함께했습니다. 지금은 작은어머니 한 분을 빼곤 모두 돌아가셔서 사진을 보고 그분들을 추억합니다. 그땐 너무 어렸기에 아버지 세대 삶의 고난과 도전의 역사를 몰랐습니다. 전쟁을 겪으며 모두 힘든 시간을 보내셨지만 그분들은 평범함 속에 우리 역사의 주인공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그 시절에도 명절에는 정장을 입고 가족들이 함께 모여 찍은 사진을 보면 참 멋진 분들이란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명절을 간소하게 보내는 추세지만 당시는 명절 때만 되면 형제 일가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원주 이씨 36대손 장남이신 아버지는 형제 일가들을 다 모이게 하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그래서 명절에 온 가족이 모이면 집 안은 늘 웃음으로 넘쳐났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원주 이씨로 무주에 처음 이주한 조상 이여공의 이야기와 역사책에 실려 있지는 않지만 소중한 집안의 역사를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집안이 화목하고 흥하려면 장손의 리더십과 베풂이 소중함을, 그리고 사회에서 조직을 경영하며 그 DNA가 발휘된다는 것은 학술적으로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어린 시절 우리 집을 기억할 때 새삼 맞는 듯합니다.
사진뿐 아니라 사진을 찍어준 사진사도 시대의 유물로 기억합니다. 지금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사진에 나와 있는 호랑이는 박제품이고 그 위에 올라가 있는 작은 꼬마가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입학 전 제 모습입니다. 지금은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지만 우리 사진을 찍어준 사진사는 한 도시에 머물지 않고 전국의 도시와 시골 마을을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당시는 그런 떠돌이 사진사가 있었습니다. 후에 어머니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사진사가 갖고 다닌 박제품 호랑이의 배 속에는 권총과 통신기가 들어있었다고 합니다. 그 사진사는 북한에서 보낸 남파 간첩이었습니다. 어머니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젊은 세대들에겐 황당하게 들릴 이야기지요. 하지만 당시는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의 만행을 부모님의 경험을 통해 수없이 들으며 빨갱이가 진짜 빨간 피부의 이상한 괴물인 줄 알고 자랐습니다.
세월이 가면 잊히는 모든 것들 속에, 아직도 나의 어릴 적 그들의 모습은 가슴속에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대한민국이 건국되고 발전할 때까지 역사 속의 평범한 그들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며 열정과 ‘희생으로 기적의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이우영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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