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세종
황현일 변호사·이재훈 회계사
최근 ‘천재 코인트레이더’로 불리는 ‘워뇨띠’가 해외 거래소 비트멕스(BitMEX)와 인터뷰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그는 ‘AOA’라는 닉네임으로 비트멕스 수익률 랭킹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가상자산 선물 매매로 4000억원 가까운 수익을 올린 인물로 알려져 있다. 종잣돈 600만원으로 시작해 수천억 원을 벌기까지의 과정을 온라인상에서 수차례 인증하며 투자자들 사이에서 신화적인 존재가 됐다.
놀라운 것은 그의 매매 철학이다. 고배율 마진을 피하고 저배율을 고수하며, 단기 수익보다 장기적 리스크 관리에 집중하는 그의 투자 원칙은, 보기 좋게 포장된 한탕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금융 교과서에 실릴 법한 전통적 원칙을 철저히 실천한 결과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워뇨띠의 성공을 본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나도 AOA 좋아하니, 워뇨띠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으로 해외 선물시장에 뛰어들었다가 대부분 처참한 결말을 맞이했다.
코인 시장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인 FOMO(Fear of Missing Out), 즉 ‘나만 빼고 다 돈 버는 것 같은 초조함’은 투자 판단을 흐리게 만들고 현실보다 욕망을 좇게 만든다. 워뇨띠라는 전설적인 사례와 FOMO가 결합하면서 많은 투자자들은 검증되지 않은 해외 거래소의 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 문을 지나며 돌아온 것은 ‘수익’이 아니라 ‘청산’과 ‘깡통계좌’였다.
파생상품은 본질적으로 제로섬 게임이다. 누군가 3000억원을 벌었다면, 그만큼의 돈을 잃은 이들이 어딘가에 존재한다. 특히 가상자산 선물은 최대 100배 레버리지로 큰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고위험 상품이다. 국내 금융시장에서는 이 같은 파생상품을 취급하려면 자본시장법상 인가를 받아야 하고, 투자자 역시 사전교육과 기본예탁금 납입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해외 코인 파생상품 시장은 딱 한 번의 클릭이면 끝이다.
워뇨띠는 인터뷰에서 “변동성이 큰 시장에서 리스크 관리는 생존의 기본”이라고 경고했지만, 시장에 뒤늦게 올라탄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리스크가 뭔지도 모른 채 배에 올라탔다. 결과는 뻔하다. 고점에서 진입해, 하락장에서 손절하고, 감정적으로 다시 진입해 더 큰 손실을 보는 악순환에 빠진다.
해외 거래소를 탓할 수 있을까? 돈을 싸들고 찾아온 고객에게 고배율 선물을 거래하지 말라고 막을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럼 정부의 책임을 주장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국민을 대상으로 한 적극적인 ‘광고’나 ‘호객’ 행위만 하지 않으면 현행 법 체계에서는 규제할만한 수단이 없다.
진짜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합법적인 경로로도 코인 선물상품에 투자할 수 없다는 점이다. 수요는 넘치지만 제도권 내 공급은 완전히 막혀 있다. 결국 투자자들은 아무런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한 채, 규제의 손길이 닿지 않는 해외 거래소에 발을 들이게 된다.
그나마 반가운 변화의 조짐이 있다. 며칠 전 발의된 ‘디지털자산기본법’(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은 가상자산 거래소의 신용공여를 허용함으로써, 일정 범위의 레버리지 투자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일 가능성을 열었다. 의미 있는 첫걸음이다.
무조건적인 금지와 외면은 보호가 아니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수요가 존재하는 한, 사람들은 길을 찾는다. 따라서 금융당국의 관리와 감독을 받는 우리나라의 가상자산거래소에서 레버리지 한도를 설정하고, 투자경험과 위험감수능력을 갖춘 투자자를 대상으로 레버리지 투자를 허용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
적절히 관리가 가능하다면 파생상품의 거래 역시 무조건적으로 제한할 이유가 없다. 투자자들의 니즈를 인정하고, 통제 가능한 방식으로 투자자들의 수요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진정한 투자자 ‘보호’다. 정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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